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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 이야기가 있는 문경새재 옛길, 그리고 옛길 박물관.

낯선 곳에서 놀기/우리나라 좋은나라

by sundayeunah 2013. 12. 9.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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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는 예부터 한강과 영남을 잇는 가장 높고 험한 고갯길이다. 일반 고개와 같이 문경재가 아니라, 문경새재인 데에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하늘재와 이화령 사이의 고개 등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란다.

 

제 1관문을 시작, 제 2관문을 지나 고개 머리인 제 3관문까지의 거리가 약 5km 남짓. 제 3관문 너머는 충청도 땅이다. 오고 가는데 3시간 30분이 걸렸다.

 

제 1관문.

 

 

 

사람이 없는 11월 토요일 이른 오전, 문경새재 길들..  

이 길은 영남 지역의 많은 유생들과 선비가 과거를 보기 위해, 혹은 고향으로 내려가기 위해 걸었던 길이다. 많은 보부상들도 걸었던 길이다. 영남지역의 관문 같은 곳이다.

 

 

 

 

 

옛길 박물관에서 본 영남대로의 여정과 우리나라 대표 10개의 옛길.

 



 

 

 

큰 길은 요즘에 만들어진 길이고, 대로 옆에 구불구불 이이져 있는 산길과 오솔길은 예전에 선비들과 상인들이 다녔던 진짜 문경새재 옛길이다.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향했던 선비들이 다녔을 문경새재 과거길이 있고, 급제 후 즐거운 마음으로 산길을 내려갔을 금의환향길도 있다.

 

 


 

 

 

과거길 선비들이 유독 문경새재 고개를 넘었던 이유

옛길 박물관에서 본 내용에 따르면, 조선시대 선비들 사이에서도 시험에 대한 징크스가 있었다고 한다. 영남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은 문경새재와 추풍령, 죽령이 대표적인 고개였는데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은 유독 문경새재를 고집했다고 한다.

문경(聞慶)이라는 지명이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뜻이고 옛 이름이었던 문희(聞) 역시 '기쁜 소식을 듣는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죽령과 추풍령은 넘기 싫어했다. 죽령을 넘으면 과거시험에 '죽죽 미끄러지고'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 낙엽처럼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수능 날 미역국 먹으면 미역국처럼 미끄러져 떨어지고, 찹살떡처럼 턱 붙으라고 찹살떡 선물하는 요즘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호남 지역의 선비들까지 이 문경새재를 넘기 위해 먼 길을 돌아가는 사람이 생길 지경이었다고 한다.

  


 

 

 

과거보러 가는 선비의 괴나리 봇짐...

 

과거길, 선비들은 괴나리 봇짐이 궁금했다. 옛길 박물관을 보니 상상도 못했던 재미있는 물건들이 가득하다.

 

 

 

사이즈가 아주 작고 앙증맞은 여행용 문구류(종이, 먹, 붓, 벼루 등)는 예상했던 바다. 

내 예상을 뛰어넘는 건 손바닥만한 사이즈의 책들. "좁쌀책"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좁쌀책 논어, 좁쌀책 대학, 좁쌀 중용 등이 있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의 마음을 반영한 요점 정리 책이 아니었을까.

그 밖에 나침반이나 지도책도 있다. 생각해보면 10대 후반, 20대 초반 - 물론 30대도 있었겠지만 - 의 젊은이들의 어쩌면 난생 처음 한양 나들이였을 테니, 얼마나 걱정이 되고 준비가 많았을까 싶다. 갓에 괴나리봇짐을 진 젊은 선비가 나침반을 들고 지도를 펼쳐 보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재미있다.

 

 


 

 

 

선비들의 과거길 숙박

이들에게 숙박도 큰 일이다. 관리들을 위해서는 국가의 관, 역, 원 등의 숙박시설이 있었고 일반인들을 위해서는 점, 주막, 객주 등이 있었다. 주막에서는 술이나 밥을 먹으면 보통 숙박료는 따로 받지 않았고 손님에게 침구를 따로 제공하는 일도 드물었다고 한다. 먼저 들어온 사람이 아랫목을 차지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는데, 좁은 봉놋방에 10여 명이 혼숙하기도 했다고 한다. (출처: 옛길 박물관)

 

 

문경새재 길에 복원된 조령원 (관리들을 위한 숙박시설)

문경새재 길의 꼭대기 고개가 바로 조령(鳥嶺)이다. 조령원은 고려와 조선 시대에 사용되었던, 관리들의 출장길에 숙식의 편의를 제공했던 공익시설이었다. 국가가 보유한 관리들을 위한 호텔 개념으로, 터만 남아 있던 자리를 복원한 것이다.

 

 


 

 

 

걷다보면 저 멀리 보이는 제 3관문. 그러니까 여기가 고개 꼭대기.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이라면, 이 고개를 넘으면 이제는 좀 숨을 가다듬고 평탄한 길을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걸었을 것이다. 한양에서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이라면, 이 고개를 넘으면 이제서야 고향 마을이 한결 가까워진 가벼운 마음길이 되었을 것이다.

문경새재를 넘으면 이렇게 평탄한 길이 이어지고 이 고갯길을 넘으면 충청도로 이어진다. (사진 출처: 옛길 박물관)

 


 

 

이 고개마루에서 이제 힘든 고개는 지나왔다는 안도감, 한쪽과는 가까워지되 한쪽과는 멀어지는 여정에 대한 복잡한 심정이 들었을 것이다. 고개 꼭대기에 서서 새재에 놓여 있는 시비를 보니 그 심정을 왠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고려 공민왕 시대 사람 이명덕의 시이다.

새벽을 무릅쓰고 새재에 올랐더니
따스한 봄기운이 때마침 자욱하다
북쪽으로 바라보니 임금님과 멀어지고
남쪽으로 내려오니 어머니와 함께하네

어수선한 여행길 헤매기 일쑤라
아득하고 푸르른 하늘만 벗 삼네
간절히 편지 한장 띄우고 싶건만
근심이 다하도록 전해줄 이 없구나

 

 

 

 

같은 사투리를 써서 반가운 고향사람들을 만나는 길이기도 했을 것이다.

 

문경새재 가는 길 (이황 선생 문집 중)

산 꿩은 꾹꾹꾹 시냇물을 졸졸졸

가랑비에 봄바람 맞으면 말 타고 오네

길가에서 사람 만남에 참으로 정겨운데

말소리 듣고 보니 고향 사람인줄 알겠네

 

 

 

 

 

문경새재를 내려오는 길에 갔던 옛길 박물관은 문경새재와 우리 옛길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안 갔으면 너무 후회될 뻔 했다.  

옛길박물관의 이야기들을 보니, 문경새재가 있는 이 영남대로는 '과거길' '성공길' '출세길'의 스토리가 강하다. 지난 강진, 해남, 진도 등의 여행에서 지나쳤던 삼남대로로 불리웠던 호남의 옛길은 '유배길' 이미지가 강하다. 영남지역의 가문이 정권을 잡고 세도가로 권세를 많이 누렸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고향쪽으로는 유배를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문경새재의 과거길, 성공길, 출세길에 하나 더 보탠 스토리가 옛길박물관에 있다. 이름하여 '상소길'이다.

1717년, 숙종 43년.

안동지방의 사빈서원이 철폐 위기에 놓이자 이 서원의 유생들과 후손들은 서울로 올라가 궁궐 앞에 엎드려 상소문을 전달하기로 한다. 주변의 서원과 선비들이 여행경비를 보탠다. 숙소에서는 상소문을 수정하고 대책을 의논하면서도 하루에 100리 길(40km)을 걸어, 출발한 지 8일 만에 서울에 도착한다.

그러나 상소문을 전달하는 과정이 수월치 않다. 한양 도착 약 1주일 동안, 상소문 전달을 도와줄 고위층을 만나러 다니고 급기야 돈화문 앞에서 연좌농성까지 벌이지만, 마침 청나라 사신의 방문으로 전달 실패. 이후 2달 동안 백방으로 도와줄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다섯 차례나 궁궐 내 전달을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한다. 도중에 양식과 여비도 떨어져 고향으로 지원을 위해 사람을 내려 보내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비변사로부터 지방 서원 철거에 조정이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비변사의 해석을 얻어냈다. 두 달 만에 서원철거 명령 철회 소식을 안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2월 7일, 즐거운 마음으로 고향으로 내려가 6일만에 도착, 고향에서 귀향 보고를 한다.

조선시대에 정책의 영향을 끼치기 위한 일종의 PA(Public Affairs) 커뮤니케이션 활동이랄까. 나는 왠지 웃음이 났다. 아마도 유생들을 규합해 밑바닥부터 의견을 모으는 작업과 고위층 접촉을 통한 의견 전달 작업, 직접적인 시위 등 다양한 방법을 진행한 끝에 비변사로부터의 정책 철회 결정을 이끌었으니 아주 성공적인 활동이었다.  

 

 

 

 

 


 

 

 

 

 

300년 전, 부담과 책무를 등에 지고, 상소문을 가슴에 품고 하루에 백리길을 달렸던 선비들이 지나갔던 겨울길.

 

 

 

 

 

8시 30분에 출발할 때는 문경새재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선비들을 지나친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생각이 들었다. 내려오는 길에는 이제 새재길을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많다. 모두들 선비 복장을 하고 문경새재 길을 한번 걸어보는 축제가 있으면 재밌겠다, 싶다. 역사적 상상력 같은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면 더 재밌지 않을까?

주차장 가는 길에 옛길박물관이 있다. 옛길과 문경새재에 대한 이야기들, 알고 걸으면 걷는 재미가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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