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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 이야기가 주는 감동, 탄광과 광부 이야기가 있는 문경 석탄박물관

낯선 곳에서 놀기/우리나라 좋은나라

by sundayeunah 2013. 11. 29.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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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에 일이 있어 내려갔다가 그냥 올라오기 아쉬워 경북 문경을 들렀다. 상주에서 갈 만한 곳으로 문경과 함께 속리산, 영주, 안동 등의 이름이 나왔는데 마침 문경새재를 제대로 걸었던 적도 없고 문경새재는 등산복장이 아니어도 된다고 해서 문경으로 방향을 잡았다.

 

오후 2시쯤 상주에서 일을 끝내고, 문경 석탄박물관으로 들렀다가 문경에서 하룻밤을 묶고 그 다음날 일찍 문경새재를 걸어볼 생각이다.

 

오후에 특별한 일정이 없어서 들렀던 곳이 석탄박물관이다. 석탄박물관과 가은 드라마 오픈세트장이 붙어 있고 티켓 창구에서 통합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11월 말, 평일 늦은 오후의 석탄 박물관과 드라마 오픈 세트장은 사람 하나 없고 썰렁하기 그지없다. 석탄박물관에 대한 기대가 애당초 없었던 것이, 사실 여기에 뭐 재미있는 게 있겠는가 말이다. 석탄의 역사나 뭐 이런 것이나 전시되어 있겠지…

 

미술관을 제외하고는 박물관이 재미있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보스톤이나 워싱턴에서도 자연사박물관이니 심지어 그 유명하다는 영국의 대영박물관 같은 것도 그냥 그랬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여기도 아마 내가 상상했던 수준의 ‘석탄박물관’이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는 ‘석탄박물관’이란 이름보다는 ‘광부 이야기 박물관’이란 표현이 더 정확했다. 박물관의 유명세와 규모와 상관없이 스토리텔링이 있는 박물관이란 이렇게 재밌고 감동을 줄 수 있구나, 나는 몇몇 장면에서 발걸음을 뗄 수 없었고 몇몇 장면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기까지 했다.

 

 

 

내가 감동했던 문경의 석탄박물관,

아니 내 맘대로 제목, ‘탄광과 광부 이야기 박물관’

 

 

“탄광에 일하셨던, 그리고 일하고 계시는 모든 분들께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문경석탄박물관

 

전시관을 들어서자마자 위와 같은 문구가 있고, 광부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으로 탑을 만들었다. 사진은 어느 소년 사진가가 찍었다고 이름이 밝혀져 있다. 아마도 그 마을에 살았던 소년이 찍지 않았을까. 유명한 사진가가 아니라 어느 소년이 찍은 사진 속의 광부들은 검은 숯댕이 얼굴로 때로는 웃고 때로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탄광의 어두운 갱도 속으로 일하러 가는 모습, 하얀 이만 드러낸 채 웃고 있는 모습, 술 한잔 기울이는 모습과 그들의 얼굴, 손, 그리고 그들의 등이 있다. – 사진 하나 하나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작권의 문제로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어서 멀리서만 전경만 찍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자료를 보니 정점을 찍었던 80년대 중반에는 361개의 탄광에서 7만 여 명의 광부들이 일했다. 광부 (鑛夫)는 두 하늘을 덮어쓰고 산다는 말을 한단다. 두 하늘은 보통 일상적인 하늘과 하루 3교대 8시간 동안 일하는 갱도 천장, 이렇게 두 하늘을 이고 산다는 말이라 한다.

 

 

                                             

 

 

 

 

 

 

 

 

광부 이야기 – 스토리가 있는 박물관

이 박물관에서 가장 좋았던 것 중의 하나가 실제 광부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광부의 스토리들을 생생하게 옮겨 놓았다는 점이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희망과 생각보다 너무 막막하고 어려워 당장 그만두고 싶다는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첫 출근의 풍경, 막장 안은 월남(베트남)만큼이나 숨이 막히고 덥다는 의미에서 월남 막장으로 불리웠다는 이야기, 광부와 쥐가 절친한 사이인 이유 등이 실제로 탄광에서 근무한 광부들의 목소리로 소개된다.

 

 

 


 

 


선탄장에는 여성 광부들도 있었다. 이들은 남편이 탄광에서 사고로 순직한 부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탄광에서 사고로 순직한 남성의 부인을 선탄부로 고용돼 석탄과 돌을 분리해 골라내는 작업을 했다.

 

“오월 달에 돌 지내고 음력으로 십일월 달에 남편이 순직당했으께 애기잖아요. 인제 열한 살 먹고 고만고만하지 아홉 살 먹고 여섯 살 먹고, 네 살 먹고, 첫 돌 지냈으께요. 턱하게 처음에 일가는데 야간이 걸렸네요. 병반(밤샘 근무반)이 걸렸네요. 방은 한 칸인데 시계는 다 되가는데 열 두시가 다 되가는데 아가 안 자는 거예요. 우는 걸 보고 일을 가면 오로지 아 우는 소리만 귀에 들리는거라요…. 우는 걸 보고 일을 또 가면 저 언니가 인제 그거를 중학교 밖에 못했어요. 애들 키운다고. 지 동생들 키운다고. 살림사니라고. 그래가 하는데, 이제 주간 때 되면 언니가 아를 업고 저거 밥 보따리하고 책가방하고 이래 이고 인자 중학교를 가요. 그럼 일하다 건너다 보면요 업고 내려가는거 보면요. 날 좋은 날은 괜찮은데 비오는 날은 가슴이 찢어져요. 가슴이 찢어져요. (24년간 선탄장에서 근무한 여성 광부)”

 

 

 


탄광촌 마을의 여러 금기들도 소개된다. 출근할 때 여자가 가로질러 가면 출근하지 않는다. 출근하기 전 여자가 방문하지 않는다. 남편 출근 시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남편이 출근한 후 신발을 방 안쪽으로 향하게 놓는다. 도시락에 밥을 4주걱 푸지 않는다…. 등등등.

이 금기사항들을 보고 남녀차별이니 어리석은 미신이니 하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것들을 보면서 안전장치 없는 삶, 죽음의 위협에 노출된 삶이 주는 긴장과 불안이 느껴진다. 갱도에 들어가는 남편 혹은 아버지 뿐 아니라 정말 온 가족이 조심조심 살아가야 하는 삶, 같은 것 말이다.

 

 

 

 

박물관에 재연된 은성탄광 사무실. 문경 석탄박물관은 은성탄광이 있던 곳에 세워졌다.

 

 

 

 

대한석탄공사 소속 탄광 재해발생현황을 보면 1957년부터 1999년까지 27회 사고에 237명이 죽었다. 한번 사고에 3명 이상 사망한 대형 사고만 쳐서 이렇다. 2명 이하로 사망한 사건이나 부상자가 발생한 사고는 포함되지도 않았다.

(박물관에 있는 사고를 경험한 광부의 인터뷰)

“출수사고 였는데, 그것도 병방이었어요. 병방이었는데, 갑자기 죽탄이 밀려들어가지고. 그 죽탄의 힘이 대단합니다. 그게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이런 쇠덩어리가 그냥 막 굽습니다. 그 힘에, 압력에. 그런께 공동에 갇혀 있는 수백 톤의 물이 한꺼번에 갱도에 터져나오니까 그 위력은 엄청납니다. 사람이 믹스가 되서 나왔어요. 그래서 시체를 찾는 데만도 상당히 며칠이 걸렸는데……목은 팔목대로 머리는 머리대로 사람 머리가 크지만은 뼈가 빠져나가니까 주먹만 해져요 사람이. 그런 참 처참한 모습을 봤는데" (23년간 탄광에서 근무한 광부)

 

문경석탄박물관 자리는 문경에 있던 탄광인 은성탄광 자리에 세워졌는데 이 은성탄광에서는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탄광사고가 있었다. 1979년, 화재사고로 무려 44명이 사망했다.

 

 

광부들이 재연(?)하는 60-70년대 탄광촌 이야기


가난했던 시절의 탄광 사택촌을 재현했다.

 

 


 


 


 

 

 

직원사택, 광원사택, 구판장과 푸줏간, 이발소 등이 있다.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 곳곳의 반공 포스터와 영화 포스터가 마치 실제와 같다.

 

 


 


 


 


 


 


 

 

 

관람객이 지나가면 자동으로 녹음된 목소리가 나오는데, 그 목소리가 전문 성우 목소리가 아니다. 심하지 않은 듯 자연스러운 듯 사투리까지 쓰는, 뭔가 어색하고 어설픈 나이 드신 분들의 목소리이다. 아마도 광부가 혹은 이 고장 분들이 직접 참여하신 건 아니었을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 박물관의 기획자는 참 대단한 사람이다.


 

 

 

 

갱도 전시장도 있어 갱도 안을 들어가 볼 수 있게 했지만 이미 5시. 문닫는 시간이 지나버려 나는 가지 못했다. 기대하지 않아서였는지, 석탄박물관이 석탄에 대한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석탄을 캐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무척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의 이야기, 그게 참 좋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면 가은 드라마 오픈세트장이 나온다. 석탄박물관을 가기 전에 여길 먼저 들렀다(기대가 없었던 석탄박물관은 시간 되면 가고, 안되면 말자는 심정).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사람이 없는 호젓한 고구려, 신라 마을을 지나치면서 나는 고구려 병사나 신라 백성을 만난다 놀라지 않겠다. 사람이 없으니 얼마나 좋은지... 마구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

 


 


 


 


 

 

 

 


 


 


 

 

 

 

 

 

숙소를 잡기 위해 문경새재를 가는 길에 잠시 들른 가은역.  지금은 폐역이 된 이 역사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오래된 건물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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