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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곳'이라는 그 곳, 충남 강경

낯선 곳에서 놀기/우리나라 좋은나라

by sundayeunah 2013. 11. 2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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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여행은 한국일보에 난 기사 하나에서 시작됐다.

[여행] 시간이 멈춘 그 곳…충남 강경

"여기 어때?" 라는 선배의 제안에, "여긴 나도 한 번도 안 가봤던 곳"이라며 여행 좋아하는 후배가 콜로 화답했고, "운전은 내가" 조건으로 나까지 합류, 토요일 당일치기 갑작스런 여행길이 시작됐다.

 

기사의 제목처럼, 정말 그 곳은 시간이 멈춘 곳, 이었다.

일제시대 충청 지역의 물류 집결지로 군산, 목포와 함께 3대 도시로 손꼽혔던 강경. 그때 당시 이미 2층 규모의 노동조합 사무실이 있을 만큼 많은 노동자들이 강경에서 일을 했고, 마치 대저택과 같은 (물론 그때 기준) 교장 관사가 말해주듯이 강경상고 또한 최고의 명문이었다. - 마치 군산상고와 목포상고가 최고의 명문이었듯이 말이다. 당시의 화려함을 말해주듯 강경에는 일제시대의 건축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군산에 가 본적이 있는 후배에 따르면, 군산에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근대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잘 관리된 이정표와 지도를 가지고 여행객을 맞는 군산과 달리, 강경에는 이정표도 없고 지도도 허술하다. 그러나 그만큼 더 조용하고 고요한 것이 강경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그야말로 시간이 멈춘 곳...

 

 

걷다가 '여기가 어디?' 하고 자꾸 뒤돌아보게 만드는, 고요한 강경의 골목길

 

 

 

 

 

 

일제 시대 만들어진 가옥의 특성은 지붕이 아래와 같이 두 겹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남일당 한약방 건물. 1923년 만들어진 건축물로, 남일당 한약방에서 건축주가 바뀌면서, 연수당 건재 대약방으로 상호를 변경, 현재는 그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강경상고 교장 관사. 당시 일제시대의 강경상고 위세를 보여주듯, 일개 고등학교의 교장 관사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넓은 집이다. 지붕이 비대칭인 것이 신기하다. 지금은 개인 소유라 들어갈 수는 없다.

 

 

 

 

 

(구)강경성결교회. 1918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대한성결교회이다. 

1919년 3월 강경을 방문했던 존 토마스 목사(서울신학대학교 초대 교장)는 교회 근처 옥녀봉에서 한창 진행되고 있던 삼일 만세운동에 연루되어 일본인들의 무차별 구타로 스물 아홉군데의 골절상을 입게 된다. 이 사건은 영국와 일본의 외교문제로 비화되었고 일본은 존 토마스 목사에게 당시 돈 5만불의 보상금을 지불, 이 중 일부가 헌금되어 강경교회 예배당이 건축되었다고 한다.  

 

 

 

오래된 역사 만큼, 교회와 관련한 여러가지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다.

이 교회 성도들은 참 멋있게도, 교회의 역사를 교회 담벼락에 재밌는 그림으로 설명해 놓았다. 덕분에 나 같이 잠깐 이 곳을 들른 관광객들은 오래된 건축물로서의 교회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신앙과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는 역사로서의 교회를 함께 생각하게 된다.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 동네길.

 

 


 

 

 

 

강경은 소설가 박범신의 고향이다. 그리고 박범신은 자신의 고향을 배경으로 한 소설 '소금'을 얼마전에 출간했다. 근대문화유산을 보러 가는 길목에 '소금'의 배경이 된 집이 있다. 책을 읽고 여길 온다면 글로 묘사된 풍경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맛이 쏠쏠할 것 같다.

 

 


 

 

 

옥녀봉으로 올라가는 길에 한국침례교 최초 예배지가 나온다. 1896년, 침례교 첫 예배가 이곳에서 드려졌다고 한다. 침례교 첫 예배든, 성결교 둘째 예배든 간에, 19세기 말, 1896년에 이곳에서 예배가 드려졌다는 사실 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하다.

기역 자의 가옥구조를 가져, 남녀와 다른 방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했다.

 

 

 

 

 

옥녀봉에 올라가기 전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생수를 산 김에 잠시 구멍가게를 뒤꼍을 지나게 되었다. 강경 최고의 전망이 내다보이는 명당이 바로 여기. 주인 할머니의 깔끔한 성격을 보여주듯이 비질 자국이 선명한 뒷마당에는 말리고 있는 나물들이 빽빽이 앉아 햇볕을 쪼이고 있었다. 할머니는 천주교 신자이시다. 가게 앞 유리에는 빛바랜 전도용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여긴 오래된 교회도 많고 김대건 신부도 이 곳에 머물렀을 정도로 천주교 전통도 있다. 초기 천주교인과 그리스도인은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포교활동을 했을 터이고 그 때 당시 강경은 손가락 안에 꼽히는 큰 도시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옥녀봉에서의 풍경. 충청 지역의 물류들은 이곳에 모여, 금강을 따라 서해바다까지 수송되고 뱃길을 따라 서울로 보내졌다.

 

 

 

 

더 없이 맑은 늦은 가을의 오후다.

 

 

 

 

11월 중순. 날이 참 맑고 따뜻했다. 뉴스에서는 추워지기 전 마지막 주말이라고 했다 한다. 사람들이 작정을 하고 놀러 나와서인지, 아침 7시에 출발했는데 고속도로가 계속 막혀 12시 즈음에서야 강경에 도착했다. 추석 연휴와 같은 정체... 혹시 강경에도 사람들이 바글거리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여긴 다행히 조용하다.

 

 

 

 

 

 

 

 

강경 시내를 걷는 출발지점은 강경역사관이다. 일제시대에는 한일은행 건물이었고, 조흥은행 간판을 달았다가 지금은 역사관으로 쓰인다. 여기서 지도를 얻어 우리는 시내를 돌아다녔다.

 

 

 

 

지도에는 여러 코스가 있지만 몇 군데를 정해 놓고 시내길을 죽 걷다보니 왠만한 곳은 다 지나쳐 온 것 같다.  

 

 

 

강경에서는 젓갈 정식을 꼭 먹어야 한다. 온갖 종류의 젓갈이 나온다. 명란젓 같이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젓갈에는 손이 덜 간다. 안 먹어본 젓갈을 맛보게 된다. 명란젓이든 창란젓이든 먹고 싶은대로 또 달라고 해도 된다. 선배와 후배는 처음 먹어본 아가미젓에 계속 젓가락질을 해 댔고, 나는 토하젓이 참 맛있었다. 참게장도 짜지 않고 너무 맛있었다. 모두들 밥을 2공기 이상씩 먹었다.

1인 10,000원. 참게장 정식은 13,000원.

 

 

 

 

이곳에 와서야 알게 된 사실은 이곳 논산 강경이 삼국시대의 그 유명한 전투, 백제와 신라의 전투인 황산벌 전투가 벌어졌던 바로 그 곳이다. 계백로라는 도로명이 보이고, 초등학교의 이름도 황산초등학교이다.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이 고장이 너무 낙후하다며 개발을 원할 것이다. 당연하고 이해된다. 단지 그 개발이 유명한 옛 건물 몇 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쏵 다 밀어 현대식으로 바꾸는 방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경을 찾을 때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물 몇 개 보러 오진 않는다.

옥녀봉 정자 밑에서 본 쓰레기통을 보면서, 개발론자들이 원하는 개발이 이런 쓰레기통을 현대식 쓰레기통으로 바꾸는 것이라면, 나는 아니라고, 이런 것들이 오히려 매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이런 것들을 동인으로 여기에 사는 사람들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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