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Fes페스, 미로와 같은 골목길 - 모로코 여행 여섯째 날

본문

 

 

 

 

2011년 10월. 모로코 페스의 아침.

 

여행지에서 숙소는 참 중요하다. 숙소가 맘에 들면 하루가 뿌듯하고 숙소가 그렇고 그러면 왠지 조급한 여행자가 되어 도시를 마구 헤매고 다녀야 할 것 같다. 이번 페스의 숙소는 참 마음에 들었다. 페스의 숙소 관련 정보는 여길 클릭.

 

 

 

 

 

 

지금 보기만 해도 군침도는 다양한 종류의 빵에, 신선한 오렌지 주스와 티, 그리고 커피까지... 든든히 먹고 우리의 가이드 아지즈를 기다린다.

 

 

 

 

우리의 숙소는 올드 메디나, 즉 페스의 구 시가지 내에 있어 골목골목을 걸어다니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11세기 만들어졌다는 대학. 이 대학으로 당시 많은 유럽인들이 유학을 왔었다 하니, 당대 최고의 글로벌 대학이었다고나 할까.

 

 

 

 

 

 

 

 

 

 

 

 

 

 

 

 

 

 

 

이 아지즈란 청년, 그냥 평범한 가이드가 아니었다. 14살부터 일을 했고, 영어와 불어, 스페인어와 아랍어를 능숙하게 하며, 큰 호텔에서 일을 하며 모은 팁으로 - 똘망똘망 일을 잘해 팁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부자들의 팁은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 얼마 전에 리야드를 하나 인수해 막 사업을 시작한 참이었다. 가이드는 그냥 겸사겸사 하는 거라 했다.

 

 

 

 

그는 자신의 리야드로 우리를 안내하고 싶어했다. 어차피 다 그 동네다. 그의 리야드는 우리가 지금 묶는 숙소 보다는 낡았지만 - 그는 그것을 backpacker들을 겨냥한 리야드라 했다 - 6개월 째 조금씩 조금씩 손을 보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런 종류의 리야드는 얼마 정도 하느냐고 믈었더니-우리는 숙박료가 아니라 건물 가격이 궁금했다 :) - , 그는 본인이 샀던 가격을 말할 수는 없지만 시세는 대략 3억 정도 한단다. 27살의 이 청년은, 14살부터 팁을 모아 13년만에 이렇게 사업을 일구고 있었다. 하루에 잠을 거의 자지 않는다는 그는, 무척 피곤해 보였고 목소리에서는 쇠 소리가 났다. 그는 자신이 중하류에서 중산층으로 올라가는 중이라며, climbing the middle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아지즈의 리야드.

 

 

 

 

 

방의 이름이 우리가 거쳐온 사막의 마을 이름이어서 너무 반가웠다.

르싸니.

 

 

 

메르주가.

이 동네 토박이인 아지즈는,  르싸니, 메르주가 등 사막에서 온 베르베르족을 직원으로 쓰고 있었다. 그는 페스의 젊은이들은 놀기 좋아하는 반면, 베르베르족은 성실하다고 했다. 나는 사막에서 만났던, 사막 투어 가이드 일이 끝나자 곧바로 자판을 펼쳐 물건을 팔던, 될성 부른 나무인 무스타파가 생각났다.

 

 

 

 

 

 

 

 

 

점심을 위해 우리를 안내한 곳은 우아한 최고급 프랑스 식당. 여긴 프랑스 식민지였던 터라, 불어가 통하고 프랑스 사람들이 많고, 그리고 수준 높은 프랑스 식당이 많다고 했다. 마라께시가 거친 사막의 도시라면, 여기는 중세 시대부터 최고의 학문을 꽃피우며 유럽 지식인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우아한 도시이다.

우리는 기꺼이 아지즈와 함께 식사를 할 마음이 있었는데, 그는 자기는 알아서 해결하겠다며 식사가 끝난 후 데리러 오겠다고 말하고 사라졌다. 정도를 지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셋이 합쳐 350디람. (물가가 싸긴 하다. 우리나라 스파게티 먹은 금액이라고 만족)

 

 

우아한 프랑스 정찬.

 

 

 

 

 

  

 

 

 

 

자, 이제 본격적으로 북적이는 페스의 미로 속으로 들어간다. 나를 모로코로 부른 환상은 사실 사막이 아니라 내가 중학교 때 사진으로 보았던 페스의 골목길들이었다.

아지즈가 오늘 오늘 우리를 안내한 곳은 북적이는 중심가, 그리고 부유층이 거주하는 동네라고 했다. 빛이 잘 들고 벽들은 반듯했다. 

 

 

 

 

 

 

 

 

 

 

 

 

 

 

 

 

 

 

 

 

 

 

 

 

 

 

 

 

 

 

 

 

 

 

 

 

 

 

 

 

 

 

 

 

 

 

 

 

 

 

 

 

 

 

 

 

 

 

 

 

 

 

 

 

 

 

 

 

 

 

 

 

 

 

 

나는 모로코에서 내내 파티마의 목걸이를 하고 다녔다. 이것은 지난 사막에서 무스타파에게 100디람을 주고 산 것이었다. 하산이 말해 준 이름이었고, 나도 연금술사에서 익숙한 이름이어서 Fatima파티마가 참 마음에 들었다. 

아지즈는 우리를 가이드 하기에 앞서, 우리 이름이 너무 어려우니 아랍 이름을 하나씩 가지라며 우리에게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했다. 나는 당당하게, 난 이미 이름이 있다고, 사막에서 생겼다고 말해 주었다. 아지즈는 웃었고 함께 갔던 경린과 난아를 위해서는 Latifa와 Lashida란 이름을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모로코에서 Latifa 라티파와 Lashida 라시다, 그리고 Fatima 파티마가 되었다.  

 

 

 

 

 

그렇게 정말 많은 길들을 걷고 또 걸었다. 지도를 보지 않고 누군가를 따라만 다녀도 된다는 것 때문에,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되었다. 미로 같은 이 도시를 거침없이 다니는 사람의 뒤를, 그저 어린아이처럼 졸졸 쫓아다닌다.  골목길은 어린 시절 내가 뛰놀았던 골목길을 연상시킨다. 정확히 말하자면, 길을 잃을 염려 없이 덤벙거리며 뛰어다니기만 해도 좋았던 순간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