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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성 프란체스코, 아씨씨의 석양

낯선 곳에서 놀기/2008 이루어진 유럽여행

by sundayeunah 2008. 12. 1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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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Assisi아씨씨.







사람들은 로마에 있다가 잠시 여길 당일치기 여행을 오지만, 당일치기로 오면 지루하고 재미없는 도시일 뿐이다.

여긴 그야말로, 그냥 쉬러 와야하고, 하루, 또는 이틀, 또는 삼일 밤을 머물러야 하는 도시다.

볼게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쉬기 위해서다. 나는 또 다시 여기서 하룻밤만을 계획한게 원망스러웠다. 



내가 머물렀던 수녀원은 산 꼭대기에 있었다. 그냥 늦잠자고, 수녀님이 차려주는 아침밥을 먹고, 수녀원의 전망을 바라보며 하루 왠 종일 앉아 있어도 너무 좋은 곳이다. 수녀원의 소위 말하는 체크아웃 시간은 아침 9시다. 그래서 나는 아침의 그 여유를 즐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전날 저녁...

나는 저녁을 먹기 전 샤워를 하고,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뜨거운 햇살을 가리기 위한 밀짚모자를 쓰고,
저 전망을 마주하고 앉아,
따땃한 햇살을 적당히 즐기며,
선배에게 엽서를 쓰고,
일기를 쓰고,
기도를 하고,
그리고 그저 멍하니 몇 시간을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 휴식이었다. 그 다음날에도 그런 휴식을 취하고 싶었는데, 로마에 대한 기대감에 로마를 6일이나 잡았던 나의 일정을 바꾸지 않고 그냥 그 다음날 로마로 갔다. 로마에서 할일이 너무 빡빡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1일차 여기, 2일차 저기, 너무 빡빡했다. 하지만 나중에 나는 후회했다. 

우리는 항상 그렇다. 막상 그 때에는 하루, 이틀, 이런게 너무나 크다.
20대, 아니 31살, 32살, 이 차이가 너무나 중요하고, 1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노는 것, 아니 3개월 취직하지 않고 백수로 지내는 일은 너무 무서운 일인 것이냥 느껴진다. 지나고 보면, 그 3개월, 그 1년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마치 이 시기는 나의 전 일생과 나의 모든 커리어에 무지막지한 영향을 끼치는 그런 대단한 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실 그렇지가 않은데 말이다. 


일주일 전,
나는 중요한 시험에 떨어진 내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 몇 개월 여행이나 다녀오는 건 어때?"

동생은 어처구니 없다는 듯 쳐다봤다. 며칠도 아니고 몇 개월이라고? 맞다, 내 동생은 다니던 회사까지 때려치고 그 시험을 준비했다가 떨어진 절박한 애다. 하지만, 나에겐 내 동생의 20대 마지막 날의 며칠과 몇 개월은 전 인생을 봤을 때 큰 차이가 없다고 느껴졌다. 그저 그걸 원한다면 한번 그래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 상황에 있으면 하루하루가 천년 같겠지만, 그 정도로 너무 의미가 크다고 느끼겠지만, 사실 하루는 하루일 뿐이고, 몇 개월은 몇 개월일 뿐이고, 80년을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그 며칠과 몇 개월의  의미는 대단찮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나는 그걸 나의 경험을 통해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나도 힘들었지만 겨우 이제 알게 되었다.




수녀님이 그런다. 
마침 오늘은 키이라 성녀 기일이라고. 이 도시는 성 프란체스코의 도시고 성 프란체스코를 열렬히 따르고 지원했던 키이아 성녀의 기념일이 바로 오늘인 것이다. 어쩐지, 사람들이 많더라니...


수녀님이 오늘 기념 뮤지컬을 한다고 알려준다. 그걸 염두에 둔 건 아닌데, 우연찮게 들어간 성당에서 마침 그 뮤지컬을 한다. 나는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그저 나는 한국에서 왔는데, 보고 싶다,고 하니까 신부님이 없는 자리를 막 만들어준다. 그 공연장은 만석이었지만, 나는 신부님이 특별히 만들어준 의자에 앉아 공연을 봤다. 이탈리아어로 된 공연이어서 내용은 전혀 모르겠다.  












아이구, 난 참 울었다.

말은 못 알아 듣겠는데, 그게 뭔소린지 알겠어서 징징거리고, 코를 그릉그릉대며 마구 울었다. 프란체스코 성자도 감동이었고, 키이라 성녀도 감동이었다. 모두 우리의 모습 같았다. 나원참,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처럼 프란체스코 성자와 키이라 성녀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런게 뭔 상관이란 말인가. 그들은 그런 일이 있었을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게 뭔 상관이냔 말이다. 우린 모두 연약한 인간이다.

그저 부족하지만 절며 절며 그 삶들을 살아나간 그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렇게 두려워하고 무섭지만, 신을 바라보고 그 삶들을 살아간 그게 아름다웠다.

참 울었다.
신부님이 다가와서 잘 봤냐고 물어봤는데, 하도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냥 좋았다고, 감사하다고 말하고는 저기 구석에 있는 모금함에 5유로를 넣고 왔다. 만약 돈이 있었으면 10배는 더 넣고 싶었지만, 나는 가난한 여행자. 




아씨씨는 나에게 휴식같은 도시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갔다. 석양이 죽인다. 지대가 높은 이 공간에 서서 석양을 보면서 저녁식사에서 마신 와인때문인지 나는 불그스레한 얼굴로 저 불그스레한 사진을 찍으며 참 많은 것이 감사하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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