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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문답법: 미안했어. 나는 너를 설득하려고만 했어.

속에서 놀기/책 속에서 놀기

by sundayeunah 2022. 2. 1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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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문답법, 피터 버고지언, 제임스 린지 지음, 홍한결 옮김, 윌북, 2021

 

어른의 문답법이라는 훌륭한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의 원제는 how to have impossible conversations: A very practical guide이다. "말이 안 통하는 대화를 이끄는 방법" 등과 같은 한글 제목이었다면 쳐다보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른'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와 '문답법'이라는 말이 주는 인문학적 감성에 이 책은 왠지 괜찮은 책일 것 같다는 선입견을 가졌다. 원제를 확인하고는 실용적인 가이드에 편견이 있는 나는 다소 망설였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이 책을 매우 재밌게 읽었고 읽으면서 꽤 많이 반성했고 배웠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말이 안 통하는 대화'란, 상대방의 생각이나 믿음 또는 도덕관, 정치관, 세계관이 나와 너무 달라서 대화해봤자 도저히 소득이 없어 보이는 경우, 한 마디로 나와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이다(p.13). 이 책은 자기 신념이 확고하다고 공언하는 사람들과 일생에 걸쳐 대화를 나눠온 경험의 산물이라고 저자는 말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크게 깨달은 사실은, 자기 신념이 확고하다고 공언하는 부류의 사람이 바로 나였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제대로 대화가 되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나는 내 신념이 확고해 내 생각을 바꿀 생각이 없었고, 내 결론은 이미 나 있었고, 내 생각을 바꾸는 것은 왠지 내가 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기에 대화의 목적이 남을 설득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을, 어떻게 하면 남을 설득하느냐,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느냐로 읽을 것이 아니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배운 것은 대화는 내가 상대방과 맞서고, 다투고, 따지고, 비웃고, 이긴다는 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너무 내가 그랬다) 손잡고, 힘을 합치고, 듣고, 배운다는 생각으로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p.26). 나 또한 기꺼이 설득당하고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거다. 나 또한 우리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가길 원하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대방도 나와 같은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자는 거다. (인터넷 분탕꾼과 사이코패스는 제외라는 단서는 달았지만)

 

이런 차원에서 바라보니 눈에 쏙 들어가는 몇 가지 지점이 있었다.

1. 모르면 모르겠다고 나도 솔직히 시인하고 상대방에게 본인의 믿음에 관해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요청한다. 나는 듣고 배우고, 상대방은 자신의 생각을 다시 정리하며 상대방 또한 막상 설명하려니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 있음을 알게되며 강경한 입장을 누그러뜨리기 쉽단다 (p.63)

2. 질문할 때, 어떤 의도를 가지고 나의 주장을 드러내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공화당 지지자들은 어째서 빈곤층의 어려움에 그렇게 무관심할까요?와 같은) 정말 답을 듣고 싶어서 하는 질문을 한다(p.72). 의도를 가지고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질문이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의도를 숨긴 질문이 유능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정으로 궁금해서 묻고 들으라는 거다. 나 또한 알고 있다. 정말 관심 있어서 하는 질문인지, 나를 공격하기 위한 질문인지.

3. 작가는 나와 상대방의 주장, '무엇'에만 연연해하지 말고 '인식원리'에 주목해보자고 제안한다. 그러니깐 상대방은 어떻게 해서 그리 믿게 되었을까, 어떻게 해서 그리 생각하게 되었을까를 묻는 거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아마 나는 이전이라면 "도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어?" "도대체 이해가 안가서 그래"와 같은 태도로 질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진심으로 궁금해하며 이해하고 배우는 자세로 대화한다면 답답한 상태를 조금은 풀어갈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 밖에 몇 가지 사소하지만 의미있는 팁들도 기억난다.  

1. 정적을 만든다. 정적은 각자 천천히 생각하는데 꼭 필요하며 신뢰를 쌓고 라포르를 형성하는데 꼭 도움이 된다(p.37). 그동안 회사에서 클라이언트나 미디어를 만날 때 나에게 정적은 매우 어색하고 불편해서 내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고 살았는데 정적은 상대방과 나 모두 찬찬히 생각해 보는 기회를 주고 오히려 서로가 신뢰를 쌓고 라포르를 형성할 수 있단다. 

2. '네 생각' '네 말'보다는 '그 생각' '그 말'이라는 중립적 표현을, '난 생각이 달라'보다는 '난 수긍이 잘 안되네'와 같이 상대방의 견해에 마음은 열려있지만 아직 동의하지 못한다는 식의 표현을, '그래, 하지만'이 아니라 '그래, 그리고...'의 표현을, '화'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답답함'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제안한다. 이것은 단순한 단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상대방을 적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동반자라고 생각하는 마음가짐의 표현이라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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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기본. 품격 있는 대화의 일곱가지 원리: #1. 목표 인식하기 #2. 협력 관계 조성하기 #3. 라포르 형성하기: 화제 가로채기는 금물 #4. 상대방의 말 듣기 #5. 내 안의 메신저 잠재우기: 상대방이 명시적으로 요청했을 때만 내 메시지를 전달함. #6. 상대방의 의도 파악하기 #7. 대화를 끝낼 시점 판단하기

2장: 초급. 생각의 변화를 이끄는 아홉가지 방법: #1. 본보기 보이기: 모르면 모르겠다고 솔직히. #2. 용어 정의하기 #3. 질문하기: 가장 좋은 질문은 어떤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는 질문이 아니라 정말 답을 듣고 싶어서 하는 질문 #4. 극단주의자와 선 긋기: 우리 편 도를 넘는 행위를 명확히 지적하고 상대편 극단주의자를 거론하지 않는다. #5. 소셜미디어 신중하게 이용하기 #6. 기여 요인 논하기: 누구 때문이 아니라 "트럼프가 일부 유권자의 표를 가져가는데 진보 좌파 행동이 기여한 면이 있다면 무엇일까?" 우리 편 나쁜 행동을 지적받았을 때 그건 양쪽 다 마찬가지라고 응수하지 않음. #7. 인식 원리에 주목하기 #8. 배우기: 답답한 대화는 배우는 자세로.

3장 상대의 마음을 읽는 일곱 가지 방법: #1. 친구가 잘못 알고 있게 놔두기. 이해가 안되면 내가 이해를 못한 탓으로 돌린다. #2. 퇴로 만들어주기. 퇴로에서 통행세를 걷지 않는다. 이제 알겠어? 하고 벌주지 말고 그냥 퇴로를 유유히 가도록#3. 표현익히기 #4. 프레임바꾸기. 총기 규제 등 정치적인 주제 논의하고 싶다면 대화의 프레임을 바꾸어 밑바탕에 놓인 이해관계를 이야기한다. 개인의 안전과 보안, 권리 등 상충하는 이해관계로, 정치적인 문제에서 안전 문제로 프레임이 바뀐다. #5. 내 생각 바꾸기. 대화 중 내 생각이 틀렸으니 내 생각이 틀렸네요, 시인하고 바꾸자. #6. 척도 도입하기. #7. 아웃소싱.

4장. 논쟁적 대화를 풀어나가는 다섯가지 기술: #1. 래퍼포트 규칙 지키기 #2. 사실 언급 피하기 #3. 반증 모색하기 #4. 그래, 그리고... #5. 화 다스리기. 

5장. 생각이 닫힌 사람을 생각하는 여섯 가지 기술

6장. 이념가와 대화하는 두 가지 핵심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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