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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만든: 팩트풀니스를 읽고

속에서 놀기/책 속에서 놀기

by sundayeunah 2021. 7. 2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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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tfulness팩트풀니스, 한스 로슬링, 김영사, 2019 

작년부터 독서모임을 다시 하고 있다. 코로나 덕분에 멀리 가지 않고도 내 방에서 화상으로 독서모임을 하니 독서모임의 새로운 세상을 만난 기분이다. 책을 계기로 사람들과 친분을 쌓기 보다는 책을 가지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더 즐겨하는 나에게는 멀리 오갈 필요도 없이 온라인으로 모여 수다를 떠니 간편하고 좋다. 알지 못했던 책을 소개받아 읽는 재미가 쏠쏠해 웬만하면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올해에는 Having,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죽은 자의 집청소, 공정하다는 착각 등을 읽었는데 팩트풀니스도 독서모임을 통해 읽게 된 책이었다.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에 대해, 사람들에게 소개를 할 일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책의 시작처럼 나도 질문을 몇 개 던지곤 했다. 

Q4. 지난 20년 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A.거의 2배로 늘었다, B.거의 같다, C.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Q7. 지난 100년 간 연간 자연재해 사망자 수는 어떻게 변했을까 (A.2배 이상 늘었다, B.거의 같다, C.절반 이하로 줄었다).

Q10. 전 세계 30세 남성은 평균 10년간 학교를 다닌다. 같은 나이의 여성은 평균 몇 년간 학교를 다닐까? (A.9년, B.6년, C.3년).

이 문항들은 내가 거의 확신에 차 답을 적었지만 예상과 다르게 틀린 문항들이었다. 내 지인들 뿐 아니라 전 세계 다양한 국가에서 교사, 대학강사, 저명한 과학자, 다국적기업 경영인, 언론인, 활동가, 정치권 고위 의사결정권자들도 침팬지가 찍은 것보다 오답율이 높았다.

 

이 책은 우리가 팩트에 기반해-그것도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접근 가능한 간단한 팩트에 기반해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왜 그럴까, 그 이유를 열 가지로 설명한다. 간극 본능, 부정 본능, 직선 본능, 공포 본능, 크기 본능, 일반화 본능, 운명 본능, 단일관점 본능, 비난 본능, 다급함 본능 등이 그것인데 나는 몇 가지 지점에서 매우 찔렸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PR 업의 특성상,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때로는 이 일은 매우 시급한 일이라며 상대방의 행동을 촉구하는 다급함 본능에 얼마나 의지했었는지, 욱과 정의감 사이 그 어딘가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비난할 누군가를 찾아 그 대상에게 실컷 욕을 해 주며 사소한 것에 분노하였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지,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혹은 내가 지금 꽂혀 있는 어떤 것에 과도하게 몰입한 나머지 모든 것을 그것에 꿰어 맞추는 것을 유능함이라고 착각하며 단일관점 본능에 매몰되었던 기억도 났다. 작가의 경험상 국제 구호 현장의 사례가 많이 나와 국제 구호 관련한 일을 잘 하기 위한 책인가보다 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이것은 일의 유능함을 더하는 방안에 대한 책이 아니라 내 삶의 태도에 대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이런 생각도 났다. 아니, 이 책은 오히려 국제구호 업계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아니 오히려 나쁜 영향을 주는 책인건 아닐까? 알고보니 이렇게 세상이 좋아졌고 극도로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사람들이 기부를 덜 하고 세상에 관심을 덜 갖게 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얼핏 들 무렵, 책 속의 일화가 내 생각을 부끄럽게 했다.  

멜린다 게이츠는 남편 빌 게이츠와 함께 자선 재단을 운영한다. 두 사람은 기초 의료와 교육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극빈층 아이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지식인과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재단과 꾸준히 접촉하며 그런 사업을 그만둬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가난한 아이들을 계속 살리면 인구 과잉으로 지구가 멸망할 것이다."... 아이들이 더 많이 살아남으면 인구는 '단지' 증가할 뿐이다. 맞는가? 절대 아니다! 완전히 틀린 말이다.  극빈층 부모는 내가 앞서 말한 이유로 자녀가 많아야 한다. 아동 노동력 때문만 아니라 일부 아이가 죽을 경우를 대비해서이다. 여성이 자녀를 5~8명 정도로 매우 많이 낳는 나라는 소말리아, 차드, 말리, 니제르 등 아동 사망률으 아주 높은 나라다. 그러나 아이들의 생존율이 높아지면, 아이들은 노동에 동원할 필요가 없어지면, 여성이 교육받고 정보를 얻어 피임할 수 있으면, 문화와 종교에 상관없이 남성과 여성 모두 자녀를 적게 낳아 제대로 교육할 꿈을 꾸기 시작한다. (p.131, 직선본능 중)

 

이것을 통계와 함께 보여준다. 초기에는 변화가 더디다. 아동 사망률이 줄어드는 것과 같은 비율로 출산률이 떨어지지 않으므로 인구가 막 늘어날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순간 S곡선, 드라마틱한 변화가 나타난다. 통계를 가지고 이야기하니 이것은 그러기를 바라는 소망도, 그럴 것이라는 추측도 아니다. 통계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강력하겠구나, 통계로 변화된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 단순히 사람들의 관심을 멀어지게 할 거라는 생각은 정말 무지한 생각이구나, 오히려 더 나아진 세상에 대한 기대와 꿈을 갖게 할 수 있겠구나, 그리고 그것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려줄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팩트를 기반에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속임수와 무지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 이 책은 사실충실성에 기반해, 세계는 계속 변화하므로 살아가는 내내 지식과 세계관을 꾸준히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본능으로는 사실을 올바르게 파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지식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 '겸손'과 새로운 정보를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호기심'을 강조하며 책을 맺는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내 주장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한 것만 보고 그것을 잘 찾는 것을 유능함으로 칭찬받았던 세계 속에서 꽤나 모범생으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효율을 중시하다보니 빨리 답을 찾고 빨리 증명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 여겨 들어맞는 것을 확대하고 반대되는 사실은 작게 취급하며 그 간극을 프로페셔널함과 자신감으로 채워넣었던 세계였다. 복잡함을 단순화하는 것이 능력이었다. 책의 한 구절에 정말 머리가 끄덕여졌다. 

경제와 사회가 크게 발전한 나라라고 해서 다 민주국가는 아니다. (산유국도 아닌)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빨리 1단계에서 3단계로 넘어갔고, 그 시기는 줄곧 군부 독재가 이어졌다. 2021~2016년에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 열 곳 중 아홉 곳은 민주주의 수준이 낮았다. 경제성장과 보건 의료 발전에 민주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그와 모순되는 현실에 부딪히기 쉽다. 따라서 우리가 좋아하는 다른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데 민주주의가 우월한 수단이라고 주장하기보다 민주주의 자체를 목적으로 지지하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다른 모든 발전을 가늠하는 단 하나의 척도는 없다. 1인당 GDP도, (쿠바에서처럼) 아동 사망률도, (미국에서처럼) 개인의 자유도, 심지어 민주주의도 단일한 척도가 될 수 없다. 한 국가의 발전을 측정하는 단일한 척도는 없다.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286p, 단일관점 본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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