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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의 8월, '아기자기 첩첩산중' 산골마을 - 당일치기 단양여행

낯선 곳에서 놀기/우리나라 좋은나라

by sundayeunah 2013. 8. 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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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단양      


어딜 가 볼까, 하고 여행책자를 뒤적거리다 보니 강원도나 전라도는 은근히 가 본 데가 꽤 된다. 오히려 멀지 않다는 핑계로 발걸음이 뜸했던 곳이 충청도였고 그 중에서 단양, 제천, 충주 등 안쪽 마을은 한번도 가 본 기억이 없었다.


당일치기가 가능하다길래 단양의 남한강변길 드라이브 코스를 가기로 했다.

 


해외여행 가이드북을 제외하고는 여행책자를 살 생각을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매주마다 자동차 여행을 한다고 결심하고 나니 책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호, 이거 완전히 나를 겨냥한 책이네, 하고 발견하자마자 사 버린 책이 바로 이 책. 자동차 주말여행 코스북이다. 발간된 지 3일 된 따끈따끈한 책이었다.

내가 이 책을 샀던 이유는...

  • 인터넷 검색에 지쳤다. 정보가 너무 많다. 피곤하다.
  • 말 그대로 자동차 여행. 어딜 가든 주차 정보가 있다. 가는 곳에 주차 시설이 없으면 근처 공영주차장이라도 소개되어 있다. 주차에 서툰 나는 안전한 주차 공간에 대한 확인이 없으면 아무래도 움직이는 게 무리다.
  • '최종 도착지'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가는 길'일 것이다. 해당 지역에 도착한 순간부터 이 책은 네비가 안내해 주는 그렇고 그런 빠른 길보다, 조금 돌더라도 아름다운 산길과 시원한 강변길로 안내한다. 나는 그게 맘에 들었다. "무엇을 보러 어딜 간다는 표현보다는, 가는 길에 무언가가 있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책이었다.

 

 

8월 말의 토요일. 이 책에서 추천한 코스 중, 단양 남한강변길 코스를 택했다. 새벽 6시에 서울을 출발, 단양에 도착하니 아침 9시다.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좀 일찍 나섰다.


단양은 "아기자기한 첩첩산중 산골 마을" 같았다.


경상도나 강원도 지역에서 만나게 되는 높은 산맥을 끼고 있는 첩첩산중은 뭔가 모르게 짙고 깊음에서 오는 막연한 두려움을 준다. 그런데 단양은 수묵화의 한 장면처럼 산 뒤에 또 산이 있으니 첩첩산중이긴 한데, 오르락 내리락 고갯길도 아기자기하고 뭔가 귀여운 느낌이 난다.

운전하면서 또는 조수석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면서 단양, 돌아다니기 참 기분 좋은 동네다..라고 생각되었다. 물론 날씨도 무척 좋았고, 내가 무난히 주차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던 것이 크다.

 

 

 

 

 

딕펑스의 VIVA 청춘(꽃보다 할배 주제곡)과 함께 한 날씨 좋은 단양의 산길~

 

 

 

 

 

 

단양의 유명한 단양 8경은, 사실 미국의 그랜드캐년이나 영국의 버킹검 궁전이 아니다. 그랜드캐년과 버킹검 궁전은 그 곳에 간 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는 곳이지만, 단양의 단양 8경은 그 곳에 간 것이 목적이 되면 다들 '에게', 할 것이다.

그 곳은 산책을 하고, 사색을 하고, 멍을 때리고, 책을 읽고, 누워 낮잠을 자거나, 술 한잔을 하며 시조를 읊어야 하는 곳이다. 그 곳에 간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시간을 보내고 시간을 누려야 하는 곳이다. 단양 8경을 즐겼던 우리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럴 수 있는 곳도 있었고, 그럴 수 없는 곳도 있었다.

 

사인암 고작 큰 바위벽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막상 보니, 김홍도니 김정희니 이런 분들이 왜 이 풍경에 감탄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낯설고 낯설다. 물론 앞에 식당과 민박집이 빼곡하지만, 아침이라 사람도 없고 시끄럽지 않아서 그리 거슬리지는 않았다.

 

 

 

 

 

 


하선암은 바닥이 평평하고 넓은 바위가 있는 시원한 계곡. 이 곳에서는 돗자리를 펼쳐 놓고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돗자리가 없다. 그래서 계곡물에 발을 담근 채, 힘찬 물살에 휘청거리는 내 발을 바라보며 물장구를 치며 앉아 있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석문은 참,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번 단양 여행 중에서 의외로 이 곳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사진 한 장에 담을 수 있는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 정말 그게 다다 - 사진으로는 담기지 않은 고요함이 있다. 아주 낯설어서 더욱 신비롭고 고요하고 평온한 풍경. 

원래 동굴이었는데 동굴의 입구만 남아 있는 거라고 한다.

 

 

 

 

 

석문은 도담삼봉에서 걸어서 5분-10분 거리다.

 

 

 

도담삼봉


이번 여행에서 가장 슬펐던 곳은 도담삼봉이다. 도담삼봉은 스토리가 있는 곳이다.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의 호가 삼봉인데, 이 도담삼봉을 보고 너무 반해서 호를 삼봉이라고 했다 한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덕에, 삼봉 정도전 선생이 꽤 유명해졌으니 이 곳이야말로 관광지로서 좋은 출발을 한 셈이다.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담삼봉의 현실은 우리가 아는 스토리와 전혀 맞아 떨어지지 않는 방향으로 가 버렸다. 도담상봉 바로 앞은 넓은 주차장-나야 감사하다-과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건물에 상점들이 빽빽히 늘어서 있고 그 앞에 있는 유람선 선착장에서는 시끄러운 가요가 확성기를 통해 계속 나온다. 그 옆에는 웬 술취한 듯한 아저씨의 고래고래 노랫소리가 엄청난 음향 시설을 통해 스테레오 타입으로 들린다. 대략 2, 300여명을 채울 수 있는 규모의 무대를 만들어 놓고, 등산복의 아저씨 아줌마들이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런데 그걸 왜 온 동네 모든 사람들이 들어야 하는 것인지...?

 


삼봉 선생이 봤으면 기가 막혔을 일.

이런 환경에서였더라면, 삼봉 선생은 이 도담삼봉을 보고 절대로 호를 삼봉으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곳을 찾은 사람들은 '에게, 사진하고 똑같잖아', 하고 실망하고 가 버린다.

여기는 촌스럽게 꽃밭과 정도전 선생의 흉상 같은 게 아니라 - 저 멀리 도담삼봉을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의 흉상이 보이는데, 아마 정도전 선생이었을 것이다. 확인하러 갈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 풀들과 갈대와 잡목들이 있는 키가 낮은 풀밭과 오솔길들이 훨씬 어울렸을 것 같다. 강변북로길 이촌 지구나 양재천과 같은 분위기였더라면 사람들이 이렇게 아쉬워하지는 않았을 텐데... 도담삼봉의 스토리와 어울리는 방향으로 갔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무 아쉽다.


도담삼봉에서 석문 가는 길은 5분에서 10분 정도 산길을 올라야 한다. 한참 오르고 있는데 등산복을 입은 한 떼의 아저씨, 아줌마 무리들이 내려온다. 한 아저씨가 우리한테 "석문 가 봤자 볼 거 없다"고 굳이 나서서 초를 치신다. 본인의 판단이 절대적이라는 오만함이 없으면 할 수 없는 말이다. 그 오만함이 싫었다. 

참 좋아서 계속 뒤돌아보게 만들었던 석문을 내려오면서, 나는 그 아저씨의 오만함이 생각나 혼자 중얼거렸다. "아저씨 같은 분은 술 한잔 걸치시고 저 무대에서 마이크 잡고 고래고래 노래를 하시는 게 볼거리고 놀거리겠죠, 석문이 좋았던 저는 당신하고 틀리답니다." 아저씨의 오만함이 싫었던 나는 나도 모르게 마찬가지로 오만해졌다.  

 

 

 

 

 


고수 동굴은 사실 그냥 지나치려고 했었는데, 막상 다니다보니 시원한 곳이 그리워 가기로 했다. 동굴의 온도는 15도. 서늘하다. 생각보다 아주 길다. 그리고 생각보다 동굴의 높이가 매우 높다. 그 높이를 우리는 계속 계단을 타고 오르락, 내리락. 밑을 내려다보면 그 높이에 현기증이 나 정말 사진 한장 찍을 수 없을 정도로 손이 덜덜 떨리고 오금이 저렸다.

 

 

 

 

 

 


향신리 삼층 석탑. 신라 시대의 석탑이라고 했다. 난 개인적으로 탑을 좋아한다. 묵묵히 시간을 견뎌온 고요함이 좋다. 

내비는 어느 마을의 좁고 좁은 동네 안길로 우리를 안내하더니 혼자 안내를 종료해 버렸다. 탑이 그 사이에 박물관으로 이사를 갔나? 아니야, 이 책은 며칠 전에 발간된 아주 뜨끈뜨끈한 책이라고... 나는 그 좁은 길을 다시 운전해서 마을길을 빠져나갈 자신이 없어서 선배에게 운전을 부탁한다. 논두렁에 빠질 것 같아 땀이 삐질났기 때문이다. 운전대를 넘기느라 잠깐 차에서 내려 기지개를 켜는데 저만치서 반짝, 하고 탑의 꼭대기가 보인다.

 

 

 

오, 이건 완전 동네 뒤꼍에 탑이 서 있다. 자고로 탑이란 뒷 배경이 절이거나, 그러므로 기와거나, 박물관이거나, 너른 광장이거나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 탑은 마을 길, 논두렁, 개량된 집, 경운기를 배경으로 서 있다. 이 또한 왠지 단양스럽달까... 소박하달까...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구인사는 천태종의 본산이다. 동서울터미널에서 구인사까지 가는 버스가 있을 정도로 큰 절이다. 구인사를 가기 위해서는 주차장에 차를 놓고, 절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왠일인지 주차장은 만차고, 길을 따라 자동차가 엄청 길게 늘어서 있다. 주차장 앞 광장에는 무대가 설치돼 있고, 오케스트라가 연주 리허설을 하고, 같은 옷 - 전문 용어로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절 복장 -을 입은 아주머니들이 득실득실대고, 그 아주머니는 나를 '처사님~'이라고 부른다.

그 날은 천태종중앙박물관을 개관하는 날. 전국 방방곡곡에서 관광버스가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는 중이었다. 아이쿠, 빨리 벗어나자. 우리는 구인사는 뒤로 하고 단양을 빠져나왔다.

 

 

단양의 첩첩산중과 남한강변길. 저 멀리 보이는 것이 온달산성.

 

 

 

 

 

 

우리의 코스는 남쪽에서 북쪽의 여정이었다.

서울 -- 사인암 -- 하선암 -- 도담삼봉(석문) -- 고수 동굴 -- 향신리 삼층석탑 -- 구인사 -- (온달산성: 책은 온달산성을 제안했지만 우리는 그냥 패스) -- 서울


단양 8경 중, 보지 못했던 것은 상선암, 중선암 - 이들은 하선암과 비슷한 형제의 계곡이다. 하선암이 제일 밑에 있으니 계속을 따라 올라가면 상선암, 중선암이 나온다 - 그리고 충주호 유람선을 타야 볼 수 있는 옥순봉, 구담봉. 충주호는 나중에 가야지 하고, 이번엔 패스했다.

 

 

남한강변길이 너무 예뻐서 중간에 잠시 차를 세웠다. 첫 장거리 여행길의 순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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