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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르하Nerja의 한적한 해변, 종일의 해수욕과 청춘의 문장들 - 스페인 안달루시아 여섯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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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르하Nerja의 부리아나Buriana beach 해변에 누워

 

10월 중순이면 날씨가 춥다고 해서, 네르하를 1박으로 줄일까도 고민했었는데 - 사실 여기서는 그냥 해변에 누워 빈둥거리는 일이 아니면 딱히 할 일이 없는 조그마한 도시다 - 오, 춥기는 커녕 너무 뜨거워서 해수욕을 하기에 아주 딱이다.

한여름 징그럽게 북적거렸을 이곳 해변은 지금은 싱그러운 파도소리가 서라운드 스테레오로 들리는 것처럼 조용하다. 드문드문 누운 사람들은 졸거나 햇살의 뜨끈뜨끈함을 즐기고 있다. 시끄럽게 떠드는 청소년들도 없다. 이탈리아 아말피를 갔었을 때 물놀이를 하지 못했던 아쉬움 때문에 다시 거길 꼭 가고 싶었는데, 글쎄.. 네르하가 있으니 됐다 싶다. 아말피와 같은 소란스러움이 없어 좋다.

 

 

 

 

 

일부러 사람이 없는 해변으로 오기도 했다. 선베드가 길게 늘어서 있는 곳은 여전히 시끌시끌하다. 나는 그 소란스러움이 싫어서 굳이 선베드가 없는 곳으로 가서 타월을 깔고 자리를 잡았다. 이 곳이 낙산이나 해운대와 다른 것은 단지 조용함과 한적함 만이 아니다. 가슴 수술을 하지 않은 여자들과 뚱뚱한 늙은 노인네들이 구명조끼도 없이 당당히 비키니를 입고 활보할 수 있는 여유로움과 높은 자존감이 있다.

 

 

 

 

 

 

 

 

 

파도 소리가 높고 바닷물은 깨끗하다. 멍하니 누워,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을 읽는다. (나는 책을 읽고, 옆에선 선배가 만들기를 한다...)

 

 

 

 

 

사랑도, 증오도, 행복도, 슬픔도, 모두 내 세계 안쪽 창에 맺히는 물방울 같은 것이었다. 그러다가...(중략) 나는 내 세계 안쪽 창에 맺힌 슬픔만으로는 부족했다. 비로소 나는 그 바깥의 슬픔에까지도 눈을 돌리게 됐다. 내게는 슬픔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신문을 보다가도, 연속극을 보다가도, 영화를 보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눈물을 흘렸다. 중생들의 고통에 눈물을 흘리던 관음보살의 눈물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건 윤리시간에 배웠듯이 측은해서가 아니라 관음보살 자신의 몸이 너무나 아프기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었다. 마음에서 비롯한 게 아니라 몸에서 비롯한 눈물이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날, 유리문을 열자마자, 유리문을 열고 조금 걸어나오자마자, 참으로 푸른 밤이구나는 생각을 하자마자 내 귓전으로 들려오던 노랫소리 귀에 들리는 듯 하다. 예술이란 결국 마음이 통하는 게 아니라 몸이 통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던 그 때의 일들이 어제인 듯 또렷하다.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p139-141, 김광석에 대한..

 

작가는 내가 경험했지만 속으로만 윙윙 거리는 감정들을 정확히 끄집어내 설명해 주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나는 책에 줄을 그으면서 20대의 몇 장면을 떠올렸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몸의 아픔이 마음의 아픔보다 더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순간들, 구로에서 영등포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바깥의 슬픔에 가슴이 먹먹했던 순간들 등등.   

 

긴 휴식이었던 네르하에서의 마지막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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