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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여유, Sevilla세비야. 스페인광장과 산타크루즈 거리에서-스페인 안달루시아 셋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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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에서 맞는 두 번째 아침.

 

또 다시 느지막한 아침을 먹고 슬슬 도시를 걷는다. 민박집 주인장이 이 도시는 다 좋은데 여름은 정말 괴롭다고 했었고 여름은 절대 피해 와야 한다고 했었다. 당시는 10월 중순을 향해 넘어가고 있던 때였다. 춥지 않은 청명한 가을 날씨. 여행의 반은 날씨다, 정말...

 

 

 

 

 

스페인 광장, Plaza de Espana.

 

 

 

 

 

 

내가 가지고 간 여행책자는 엉터리였는지, 스페인 광장에 대한 소개가 없었다. 민박집 주인장의 추천이 아니었으면 이 아름다운 곳을 그냥 놓칠 뻔 했다.

 

 

 

 

 

 

 

 

 

스페인 광장은 스페인 각 도시를 상징하는 그림이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지금은 비자 신청을 받는 관공서로 쓰인다는 둥그런 반원형으로 광장을 에워싼 건물에는 스페인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무언가 낯익은 구석이 있었는데 멕시코시티에서 보았던 멕시코 광장이 생각났다.

 

 

 

 

 

 

 

 

 

우리가 스페인 광장을 찾은 날은 마침 일요일. 핑크리본, 아디다스 등의 로고들이 보이는 가운데, 무슨 마라톤 행사가 열리고 있다. 옆 공원에서는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쇼핑하려는 선배들과 헤어져 먼저 스페인 광장에 자리를 잡고 앉아 Q.T.를 할 생각이었다. 가는 길에 내 시선을 잡아끄는 낯익은 등이 걸려 있다. 모로코에서 보았던 것들이다.

혹시나 하고 그 부스를 들어갔다. 마라께쉬 상점에서 마지막까지 나를 갈등시켰던, 마지막에 지갑까지 꺼내들었지만 원하던 색의 흠집이 없는 물건을 찾을 수 없어 결국은 사지 못했던 그 가방이 턱하니 걸려 있다. 그것도 색색깔로 줄지어. 25유로. 빨간색도 사고 청록색도 샀다.

 

 

 

 

 

나는 탕헤르에서 왔다는 모하메드를 붙들고, 나도 지난 주에 모로코에 있었다고, 마라께시와 페스와 사막을 갔었다고. 이름을 묻는 그에게 나는, 나의 이름은 은아이지만 사막에서는 파티마였었다고, 그리고 또 다른 모하메드도 만났었다고, 나는 모로코가 좋다고, 그래서 또 갈 거라고, 묻지도 않은 말들을 떠들어댔다. 이 예상치 않은 만남이 무척 흥분되었다. 나는 이제 아쉬움보다는 좀더 밝고 유쾌한 마음으로 모로코를 그리워한다.

 

 

커피 한 잔으로 오전을 마무리하며, 세비야 시내길을 따라 좁은 골목길로 들어선다.

 

 

 

 

 

 

 

 

 

산타크루즈 거리Santa Cruz, Meson del Moro

 

일요일 오후, 산타 크루즈의 좁은 거리에는 고급 레스토랑과 맛있는 음식냄새, 길가에 마련된 테이블, 그리고 투우사 복장으로 기타 치고 노래하는 거리의 악사들이 있다. 우리는 무언가를 꼭 봐야 한다는 의무감도 없이 거리 구석구석을 슬슬 다닌다. 뭔가 모르게 기시감을 주는, 이 산타 크루즈 지역의 좁은 골목길을 걸으며 나는 이런 저런 희미한 추억들을 떠올렸던 것 같다.

 

 

 

 

 

San Marco 레스토랑. 화이트 와인 한 잔. 그리고 알리오 올리오 스파게티. 감사한 하루가 간다.

 

 

 

 

 

Plaza de Meyor

세비야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목조 건축물이 있다. 수 많은 격자들이 구름 같이 흘러 가며 시원한 그늘을 만든다. 가족들과 청년들이 와서 햇살을 쪼이거나, 햇살을 피한다.

 

 

 

 

 

 

 

 

 

 

 

바람이 참 시원하다. 시원한 그늘에 앉아, 한참을 책을 읽었다.

 

 

 

 

내게도 꿈이라는 게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는 마음을 잡아 끄는 그 절실함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 p53.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

 

 

이 책은 세비야의 민박집 책 읽는 침대에서 빌려온 것이었다.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 산문집이다.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세비야를 떠날 때 민박집 주인장의 양해를 구해 이 책과 함께,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이렇게 2권의 책을 빌려왔다. 많은 책들이 손님들이 놓고 간 책이라고 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아마도 짐작컨대 표지 그림 때문에 여기 세비야에 와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책 표지의 그림인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그림이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다.

 

 

 

 

박민규의 책은 론다에서 다 읽었고, 김연수의 책은 네르하의 해변까지 함께 했다. 박민규의 책은 마드리드의 우체국에서 세비야로 돌려보내졌고, 김연수의 책은 한국까지 함께 비행기를 탔다. 책이 너무 맘에 들어 흔적이 깨작거려졌고, 한국에 돌아가면 새 책을 사서 보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뜻 책을 빌려준 것이 고마워, 나는 한국에서 세비야로 책을 보낼 때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과 함께 1-2권을 더 선물하고 싶었다. 한국을 떠나 있으면 한국 음식이 그립고 한국말도 그립지만, 그녀는 한국인 민박집 주인. 그런 것은 별로 안 그리울 터였다. 나라면 문장이 그리울 것 같았다. 글씨가 그리울 때는 한국 신문 쪼가리를 들고 읽고 또 읽는다지 않는가. 물론 그녀의 민박집에는 손님들이 놓고 간 책들이 많았지만 글쎄,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해서 들고 왔다고 많이들 놓고가는 "사랑 뒤에 오는 것들"류 말고, 뭔가 구수하면서 올드하면서도 뜬금없는 책이면 좋을 것 같았다. 잘 기억 나진 않지만 이문구의 관촌수필과 함께 황지우의 시집을 골라 보냈던 것 같다.

 

 

(마드리드, 공항 가기 직전 우체국을 떠나, 박민규의 책을 세비야로 돌려보냈다~)

 

 

 

 

 

오늘은 세비야의 마지막 밤. 내일 아침 일찍 우리는 론다Ronda로 갈 예정이다.

이 도시의 여유로운 공기와 태양과 재밌는 물건들, 대도시의 시끌법적함, 작은 골목길들이 고마웠다. 뜻하지 않게 만났던 모로코도 반가웠다. 여유롭게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어 행복했다. 론다에서도 그러고 네르하에서도 그럴 것이다.

 

 

 

마지막 날, 열심히 지도를 보며 시내 곳곳을 - Plaza de Meyor 찾아가던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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