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 (p.174)
내 인생이 망쳤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가요? 회복 불능의 삶. 삶은 살아가면 살수록 나를 엿 먹이고, 살아가면 살 수록 안 좋아지므로 생을 그만두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계신가요? 아마 계실 거예요. 저도 예전에 그랬던 적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그만 생을 마감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사람들입니다. 주인공 모모(모하메드)는 (아마도) 창녀의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 없는 모모와 같은 아이들을 양육비를 받으며 키우는 사람인 로자 아주머니의 손에서 자랍니다. 모모가 이 세상에 태어나 아마도 처음 인지하고 관계를 맺었던 로자 아주머니가 자신을 돈을 받고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모모는 무척 절망하면서 똥을 싸야 부모님이 올까, 친구들과 싸우면 부모님이 올까, 어떻게 사고를 쳐야 부모님이 올까 고민하는 유년기를 보냅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오지 않았습니다.
로자 아주머니는 어떻고요. 그녀는 유태인입니다. 유태인 수용소 학살의 현장에서 간신히 살아남았습니다. 아직도 경찰들이 문을 부수고 자신을 데리고 수용소로 가지 않을까, 이상한 꿈을 꿉니다. 그녀는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아 50살이 될 때 까지 창녀로 살았습니다. 때론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 놈은 로자 아주머니의 돈만 사랑했습니다. 덕분에 빈털털이가 되기도 했지요. 나이가 들어서 찾게 되는 남자들이 없자, 로자 아주머니는 창녀들의 아이들을 돌보는 사업을 시작합니다. 말이 사업이지, 아이들은 빽빽 울고 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7층에, 찾지 않는 부모를 기다리는 모모와 같은 아이들은 부모를 기다리며 여기저기 똥을 싸 댑니다. 아이들을 버리고 돈도 주지 않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아주머니는 매번 힘들어서 웁니다.
나의 삶은 아니었으면 하는 이 삶에 대해, 그래도 저는 이 책을 읽으며 따뜻함을 느낍니다. 물론 감정적으로 직면하고 싶지 않은 장면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따뜻함을 느낍니다. 모모의 말처럼, 생(生)은 로자 아주머니를 망쳤지만 (로자 아주머니는 살면 살수록 객관적인 시각에서는 안 사는 게 나을 정도로 삶이 꼬였지만) 그럼에도 삶(生)을 살아냈고, 그 과정에서 나의 연약함과 나의 결핍과 상처를 아는 친구들을 만나 갑니다. 모모로 대표되는 그 친구들은 나에게 왜!, 밤에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리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뒤에 가서 숨느냐고 추궁하지 않습니다. 그 친구들은, 왜!, 아파트 지하의 숨겨진 공간에 가서야 제대로 숨을 쉴 수 있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그냥 조용히, 죽은 나를(죽어가는 나를), 내가 가장 편안히 여기는 아파트 지하의 공간, 나만의 공간, 유대인의 무덤이라고 지칭한 그 곳에 나를 데려다주고, 그 곳에서야 내가 겨우 편안히 잠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를 그 곳으로 데려다 주니까요.
로자 아주머니의 마지막 순간은 그녀의 유태인 무덤(그래봤자 아파트 지하)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모는 알았습니다. 로자 아주머니가 말하지 않아도 그냥 알았습니다. 모모는 로자 아주머니의 인생을 그냥 알게 되었어요. 나의 삶을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내 곁에 그런 사람이 있을까. 나는 누구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을까. 모모가 로자 아주머니의 삶과 결핍과 그 두려움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그녀의 마지막 공간으로 유대인의 무덤으로 그녀를 데려갔던 것처럼, 나는 누구의 삶을 그렇게 온전하게 이해하고 있을까. 여러가지 생각을 남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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