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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파업과 김태호PD, 그리고 정은임 아나운서에 대한 단상

같이 놀기

by sundayeunah 2008. 12. 30.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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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나는 무한도전 광팬이다.


일이 있어 못 보면 다시보기로 무한도전을 본다. 시청율이 떨어지네 재미없어졌네 할 때도 난 프로그램이란 업앤다운이 있는 거라고 좀 느긋하게 기다려보자는 입장이다. 

엊그제도 무한도전을 못 봐서 다시보기로 무한도전을 봤다. You&Me Concert. 무한도전 멤버들의 빅뱅 뮤직비디오 패러디도 기대하고 있었고 연주도 고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한도전에 그 내용이 쏙 빠져 있었다. 이상했다. 게시판에 들어가 봤다. 




알고보니, You&Me Concert 다음 날인 12월26일부터 무한도전 제작진이 MBC 파업에 참여하느라 편집을 마무리할 수 없었고 그래서 예전과 다른 분위기로 방송되었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나는 2008년 MBC 파업을 그렇게 접하게 되었다. 


2008년 MBC 파업 이야기...  

도대체 파업을 왜 하는지 기사를 보아도 제대로 된 답변이 안 뜬다. 
아나운서들이 거리 집회를 한다, 뭐 이런 사진들만 도배되어 있을 뿐... 

지인들에게 묻고 검색하면서 알게된 MBC 파업의 이유는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 법률 개정안>에 반대하는 것. 
그동안 신문사와 대기업이 방송사를 소유할 수 없었는데 이 법안이 통과되면 기존의 신문사들(예를 들면 조중동)과 대기업도 방송사를 소유할 수 있게 된다. 이 법안에 찬성하는 측은 큰 기업이 들어가야 방송의 질도 좋아지고 경쟁력이 향상되고 다양한 방송을 통해 시청자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고 반대하는 측은 시청자들의 방송 선택권이 다양화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보수 편향 방송이 늘어나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공영방송인 MBC가 타겟이 되어 재벌과 보수 언론사가 MBC 지분을 소유하는 길을 열어준다고 법안을 반대한다(최악의 시나리오: 방송통신위원회는 MBC 재허가권으로 MBC 의사결정자(경영진과 방문진)을 압박해 MBC 지분을 재벌과 보수 언론 컨소시엄에 넘겨 버릴 것). 참고: <고재열의 독설닷컴>

2017년 9월의 생각: 결국 한나라당은 2009년 7월 미디어법을 날치기 통과했고 그 결과 나온 게 종편(종합편성채널)이다. 2010년 12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와 매일경제신문이 나란히 TV조선, jTBC, 채널A, MBN을 만들어 소유하게 되었다. 4개 방송사 모두 똑같은 어조의 방송을 내보낼 것이라는 예상은 jTBC의 의외의 일탈로 빗나갔다. jTBC는 손석희 사장을 앞세워 보도 부문에서 다른 행보를 보이게 되었다. 


나는 수면 위로 보이는 <미디어 관련 법률 개정안> 이슈 이면에 뿌리 깊게 도사리고 있는 숨겨진 이슈가 무서웠다. 언론의 공정성에 대한 다른 생각들, 언론의 공정성 문제를 다루는 방식의 차이에 대한 것이었다.   

보수 성향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지인이 말했다.  

현재(2008년) 기자나 PD가 얼마나 불공정한지 아느냐. 그들은 공정성에 대한 검증 없이 편파적으로 자기 생각을 막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이 통과되면, 그 "싸가지 없는"(불공정한) 기자와 PD를 "시장(시청율)"이 "응징-이건 내 표현이다"할 것이다. 현재 MBC 뉴스에 대한 시청율이 떨어지고 있는건 그 만큼 MBC가 불공정하다는 것의 반증이다. MBC의 광우병 보도, 이명박 BBK 사건 보도의 불공정성을 보란 말이다.

지인이 보기에는 MBC의 BBK 보도가 그렇게 불공정했다는데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이 생각의 차이란. 솔직히 말하자면, 비록 이 방송법 이슈가 무한도전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을 것 같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불끈 일어난 무한도전이 고맙다. 백분토론을 위해 무한도전이 일어난 셈이다.  

2017년 9월의 생각: 지인의 방향과 다르긴 했겠지만 언론의 불공정성에 대해 시청자가 시청률로 응징한다는 지인의 말은 사실이었을까. 지난 9년 이명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MBC의 뉴스 시청률은 바닥을 쳤다. 2008년 초, 10%를 넘나들었던 MBC 뉴스데스크의 시청률(닐슨코리아가 2008년 1월부터 시청률 자료 공개함)은 2012년 후반 5% 아래로 떨어지며 공중파 3사 최하위를 기록하더니 급기야 박근혜 탄핵 촛불 열풍이 불던 2016년 12월 시청률 2.8%이라는 치욕스러운 시청률로 곤두박질쳤다(그때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MBC 기자들의 김장겸 물러나라 피켓팅 기사). 

동료 기자들이 보는 MBC에 대한 평가도 시청률과 동일했다. 한국기자협회가 기자 300명을 대상으로 매년 '소속사를 제외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사'와 '신뢰하는 언론사' 조사를 한다. 2009년 영향력 있는 미디어 3위(17.9%), 신뢰하는 미디어 2위(14.3%)였던 MBC는 2017년 모두 처참한 성적으로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영향력 있는 미디어로 꼽은 기자 1%, 신뢰하는 미디어로 꼽은 기자 1.3%)(2009년 조사결과, 2017년 조사 결과). 2017년 1위는 모두 jtbc.



2008년 파업 당시 태호PD 인터뷰.








2012년 파업, 그리고 2017년의 파업 (2017년 9월의 생각)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김재철이 MBC사장으로 취임한 뒤로 MBC는 공정방송으로서 권위가 추락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뉴스 후 등 시사 프로그램은 폐지되었으며 관련자들은 지방으로 발령나는 '보복성 인사'가 늘었고, MBC 뉴스데스크는 정권 홍보 방송으로 전락했다는 혹평을 받았다. 이에 2012년 MBC는 파행 보도의 원인인 보도국 인사 교체를 요구하며 170일이라는 MBC 역사상 최장기 파업을 벌였다. 

파업 이후 5년 간 MBC를 비롯한 KBS 등의 몰락은 영화 공범자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해고 10명, 중징계 110명, 유배 157명. PD와 아나운서와 기자들이 마이크와 펜을 놓고 아이스링크장이나 업무가 명확하지 않은 부서, 소위 말하는 유배지로 발령받았다. 아나운서국의 수난은 심했다. 11명이 방송을 할 수 없는 타 부서로 배치됐고 아무 일도 배정받지 못했던 아나운서 12명이 결국 MBC를 떠났다. (MBC 노조 페이스북, 기사, 나무위키, 2017 MBC 파업 김민식의 외침부터 김장겸 체포영장까지 100일간의 기록)

공범자들




그리고, 1995년, 정은임 아나운서.

아나운서들의 파업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정은임 아나운서가 떠올랐다.  

그녀가 정은임의 영화음악을 처음 그만뒀던게 1995년. 나는 너무 화가 났다. 

그녀가 감히 방송에 내보냈인터내셔널가임을 위한 행진곡 같은 것을, 입을 쩍 벌리며 너무 놀라서 들었던 나다. 
(겨우 찾았다. 그날 방송의 인터내셔널가와 임을 위한 행진곡. 끝까지 드래그하면 나온다)

그게 너무 좋았었는데.... 그만둔게, 아니 짤린게(우린 그때 그렇게 확신했고, 지금도 그렇다) 너무 화가 나서, 나는 당시 하이텔에 만들어진 정은임 복귀 위원회 모 이런걸 가입했던 것 같다. 글도 쓰고, 사람도 모아보고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는 정은임 아나운서를 지지하는 것이지 배유정씨를 욕하는 건 아니예요, 이런 류의 글을 쓰면서 하이텔에서 만났던 나랑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될지를 고민했었다.

하지만 우린 방법을 몰랐다. 지금이라면 블로그와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녀의 방송테입을 구해 그것을 아카이빙하고 했겠지만  그때는 익스플로어가 나오기도 전인 PC통신 시절이었다. 

그녀는 2003년 다시 영화음악에 복귀했다가, 2004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그녀는 참 저돌적이었고 아름다웠다.






외모와 안 어울리게 잠바를 입고 파업을 하면서 손을 들고 운동가를 불렀고, 그랬다.

나는 지금, 무한도전으로 시작한 이 글을 그녀의 목소리로 끝맺는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길 클릭하시라. 2003년 방송이다. 내가 좋아하는 빌리 엘리어트의 음악과 그리고 2003년 죽은 어떤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쩜... 1994년에는 그녀의 열성팬이었건만, 2003년에는 일에 바빠 라디오를 들을 시간이 없어서 지금에서야 그녀가 영화음악에 복귀했었고 또 이런 멘트를 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게 미안하다. 

MBC 아나운서가 추억하는 그녀.
정은임 추모사업회 홈페이지. 92년부터 95년, 그리고 2003년부터 2004년의 그녀의 방송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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