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멕시코] 멕시코의 세 가지-택시강도, 축구, 데낄라

낯선 곳에서 놀기/2004 멕시코~멕시코~

by sundayeunah 2008. 6. 26. 17:45

본문

 


 

멕시코...

멕시코에서 4년을 살고 있는 선배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밤 거리에서 그것도 도시 외곽에서 길거리 음식을 먹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선배는 잠시 후배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오겠다며 잠시 자리를 뜬다. 레이첼과 나는 축구 경기에 정신이 나가있는 멕시칸들을 안주 삼아 맥주 한 잔.

 

 

 

 

9시에 오겠다는 사람들이 10시가 넘었는데도 소식이 없다. 이런, 멕시칸 같으니라고. 핸드폰에서는 모르는 소리만 나오고 집으로 전화를 하니 함께 병원에 가기로 했다던 후배가 아직도 선배를 기다리고 있다. 헉, 7시에 간다고 나갔어요. 우리의 이야기에 20분이면 오는 거린데… 후배의 목소리가 어두워진다.

아니나다를까, 조금 있다가 선배가 눈이 벌개 가지고 나타났다.

잘 들으라고, 꼭 호텔 통해 택시 잡아타고 들어가라고, 강도를 당했는데 별일 없었다고, 강도도 잡았다고, 그거 이야기하러 왔다고. 언뜻 보니 뒤에 경찰 나으리. 다시 경찰서로 돌아가야 한다며 허겁지겁 간다. 강도를 당한 사람인데도 강도처럼 취급한다. 말도 안 통하는 나에게 이야기를 꼭 해 주러 와야 한다고 사정을 해서 경찰을 대동하고 이 말을 전하러 왔던 것이다.

 

허둥지둥 공중전화로 가서 호텔에 전화를 한다. 호텔에서 연결시켜준 택시회사는 계속 연결이 안 된다. 오 맙소사. 그나마 약간 영어를 했던 친절한 웨이터가 공중전화 부스까지 같이 동행을 한 상태. 여기 택시도 안전하다고 그냥 타고 가도 된단다. 우리는 그 사실을 백번도 더 확인하고는 그 택시를 타기로 결정한다. (선배가 당했다는 강도가, 바로 택시강도였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런 결정을 못 내렸을 것이다)

오후에 함께 디에고 리베라 작업실 근처를 산책하다가 레이첼과 내가, 여기는 참 부자 동네다, 납치는 이런 동네 사람들이 당하겠다, 고 하니까 선배가 그런다. 얘네들 납치하는 게 다 우리 동네 애들이야. 하하하, 그냥 웃고 말았는데 그날 동네 애들한테 완전히 당한 거다.

 

이 친절한 웨이터, 이름이 다비드라고 했다. 영어를 전혀 못 하는 택시기사에게 뭔가를 잘 설명해준다. 자기가 택시 번호도 기억하고 있으니까 걱정 말라고, 호텔로 들어가면 전화 달라고, 그래야 자기도 안심이 된다고, 아주 버벅버벅 힘들게 영어로 말했다.

 

 

 

그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고마워, 얼굴이라도 기억해 두고 싶어서 카메라를 꺼냈다. 레이첼이 옆에서 그런다. 어, 그래 좋은 생각이다. 택시 번호 찍어둬야지. 어? 어 그래. 나는 택시 번호와 다비드의 사진을 연달아 찍고는 서둘러 택시에 오른다.

 

 

 

택시 기사가 계속 스페인어로 뭔가를 떠든다.

선배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택시에서 위험하다 싶은 느낌이 들면, 일부러 스페인어로 말도 많이 하고 동네 지리에 대해 많이 아는 척을 해서 여기 사는 티를 팍팍 냈었다고. 우리는 불행히 그럴 수는 없지만 알아듣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뭔 소린지도 모르지만, OK, I see, 하하하, 심지어 우리는 웃으면서 맞장구까지 친다.

레이첼은 가지고 있던 페소를 내게 쥐어준다. 혹시 둘이 찢어지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란다. 그녀는 지금 독립투사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지금 저게 택시 문이 안 잠겨 있는 상태인 거야, 잘 기억해 둬. 여차하면 택시문을 열고 뛰어내릴 태세다.

택시 기사는 뭐라뭐라 하면서 자꾸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바람에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결국 어디쯤 오자, 더 이상 갈 수가 없다는 표정이다.  불빛이 하나도 없고 사람이 살 것 같지도 않은 공장 단지 같은 곳. 어쩌란 말이냐, 나는 완전히 절망했다.

 

저기 보니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보인다. 멕시코에서는 절대로 경찰을 피하라고 했었는데, 하지만 우리는 방법이 없다. 지도를 들이대며 우리 호텔의 위치를 찍었다.  

알고 보니, 그날 대학 축구 경기가 있었는데 이긴 팀의 팬들이 독립기념탑 앞으로 뛰쳐나와 택시가 더 이상 갈 수가 없다는 거다. 우리가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우리 호텔은 독립기념탑 바로 앞에 있었다. 다행히 3블록만 걸어가면 된다.

길거리를 걸으면서 레이첼은 조심, 또 조심이지만 난 차라리 북적거리는 거리가 안심이다. 호텔 근처, 그제서야 사진 찍을 정신이 든 우리는, 오늘 멕시코의 모든 것을 경험한 느낌이라고, 그렇게 하루를 마감하다.

 

그리고 이왕, 강도축구경찰까지 만났다면, 마지막을 멕시코 상징의 정수, 데낄라로 마무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왕이면 한국에서 먹기 힘든 애벌레가 들어가 있는 마스깔로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호기를 부리며 우리는 술병을 들고 호텔로 들어갔다.

 

(술도 잘 못 마시는 레이첼은 몇 잔의 마스깔에 엄청 취했고, 호텔 전화로, 헤어졌던 한국의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전화요금만 우리 돈으로 20만원이 넘게 나왔다. 레이첼은 체크아웃하면서 허거덕했지만, 뭐,  지금 그 남자친구와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살고 있으니... 됐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