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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송시열의 글쒼바위에서 시작된 해안도로 일주

낯선 곳에서 놀기/우리나라 좋은나라

by sundayeunah 2013. 11. 8.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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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강진, 보길도, 진도를 돌아 본 3박 4일 이번 여행의 여정.

1일차: 서울 --> 강진 무위사 (관련 글은 여길 클릭) --> 영랑생가 (관련 글은 여길 클릭) --> 다산초당과 다산문화관 (관련 글은 여길 클릭)--> (백련사) --> (녹우당) --> 대둔사 (관련 글은 여길 클릭) --> (두륜산 케이블카) --> 송지 해수욕장 --> 땅끝마을 숙소 (관련 글은 여길 클릭)

2일차: 땅끝마을 --> 보길도 윤선도 사적지(세연정, 낙서재, 곡수당, 동천석실) 관련 글은 여길 클릭  --> 보길도 해안도로 --> 땅끝마을

 

 

 

오전은 윤선도의 사적지를 돌아다녔다. 윤선도 사적지는 모두 섬 중앙에 위치해 있다. 관련 글은 여길 클릭.

오후는 내내 해안도로를 따라 보길도를 돌아다녀 볼 생각이다. 섬 오른쪽 끝에 있는 송시열의 글씐 바위를 갔다가, 예송리 해수욕장을 거쳐,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해안도로를 거쳐 섬을 돌아볼 것이다. 한 바퀴를 온전히 일주할 수 없는 것이, 보족리 공룡알 해변에서부터 예송리 해수욕장까지는 도로로 연결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절벽이다.

 

 

 

보길도 지도 출처: http://www.skyspace.pe.kr/

 

 

 

송시열의 글쒼바위  

 

송시열과 윤선도는 일종의 라이벌이었다. 송시열과 윤선도는 인조 시대, 효종이 세자로 있을 때 나란히 세자의 사부를 지낸, 효종의 스승이었다. 송시열은 서인이었고, 윤선도는 남인이었다. 세자가 임금으로 즉위하면 세자시강원 사부는 중용되는 것이 관례였지만 윤선도는 중용되지 못했다. 송시열은 승승장구했으나 윤선도는 16년 간 유배생활을 했다.

 

윤선도가 현종에게 올린 상소문은 최고의 권력자였던 송시열을 겨냥한 직격탄이었다. "시열은 도리어 문과수비(허물을 감추지 않고 뉘우치지 않음)하려는 꾀가 있어서 예경의 글자들을 주워모아 자기의 뜻에 맞게 부회하니 그 사설이 번거롭기만 합니다" 서인체제에서 수장격인 송시열에 대한 저항은 곧 죽음임을 모르는 바 아니었거늘, 고산은 스스로 그것을 행했다. 다행히 결과는 죽음이 아니라 유배로 귀착되었다. (송호근, 나타샤와 자작나무, p.27)

 

 

 

 

송시열의 말년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와 서인세력은 한 때 숙종의 눈 밖에 났고 그의 나이 83세, 1689년 제주도로 유배길에 오른다. 그러나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윤선도가 그러했듯이 풍랑은 그를 보길도에 내려놓았다. 그 때가 이미 윤선도가 숨을 거둔 지 18년 뒤의 일. 아마도 소문을 통해서 윤선도가 이 곳을 아껴 정자를 짓고 집을 지어 머물러 살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송시열은 어명을 받들어 제주도로 가기를 기다리면서 이 바위에 글을 남겼다고 한다 - 직접 남겼을 것 같지는 않지만....

 

 

 

여든 셋 늙은 몸이

푸른 바다 한 가운데에 떠 있구나

 

한 마디 말이 무슨 큰 죄일까

세 번이나 쫓겨난 이도 또한 힘들었을 것이다 (중국 고사를 인용한 말)

 

대궐에 계신 님을 속절없이 우러르며

다만 남녁 바다의 순풍만 믿을 수 밖에

 

담비갖옷 내리신 옛 은혜 있으니

감격하여 외로운 충정으로 흐느끼네

 

 

송시열이 바라보았을 바다... 이후 제주도에 도착한 그는, 그해 사약을 받는다. 그의 나의 83세. 이 당시에 그는 죽음을 예감했을까. 윤선도가 머물렀던 이 보길도에서, 서인의 영수로서, 윤선도를 포함해 유배를 보냈던 많은 남인들이 떠올랐을까. 당쟁이 아니라면 참 좋은 친구였는데.. 생각나는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


 

 

 

 

주차장에서 글쒼바위로 가는 길...

 

 

 

 

 

보길도 해안도로를 그냥 달린다. 날은 흐리고 밭은 푸르렀고 뭔가 기름졌다.

보길도의 느낌은 그랬다. 기름지다... 흙 색깔은 더 짙은 고동색이었고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메마름이 느껴지지 않는 남도의 풍경. 그래서 더 여유롭고 풍부해 보였다. 해남 사람이었던 윤선도도 보길도는 해남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꼈다지 않은가.

 

 

 

 

 

 

 

 

 

 

 

 

 


 

 

 

노화도와 보길도를 잇는 보길대교.

 

 

 

 

 

노화도에서 다시 배를 타고 땅끝마을로 가는 길.

 

 

 

 

점심은 보길대교를 넘어가자마자 있는 노화도의 횟집에서 먹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회를 먹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 싱싱한 전복회가 포함된 회를 먹었다. 마침 나처럼 혼자 와서, 전날 비빔밥으로 끼니를 때운 여행객이 있어 의기투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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