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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3) 마지막날, 엄마 아빠와 함께 하릴없이 시내를 걷다 -터키 여행 일곱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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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여행 7일차 - 이스탄불 3일째

 

여행의 마지막 날.

엄마와 아빠는 자정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떠나고, 나는 그 다음날 새벽 비행기를 타고 모로코로 떠난다.

오늘은 쇼핑도 하고, 터키식 전통 목욕도 하고, 그냥 하릴없이 여유롭게 좀 돌아다닌다. 어딘가를 가야 한다는 강박이나 부담없이 발길 닿는 데로... 엄마나 아빠에게 익숙할지는 모르겠다.

 

 

 

 

이제 외국인들 사이에서 호텔 조식을 먹는 엄마와 아빠가 어색하지 않다. 이 호텔에는 동양인이 없었다. 급한 일이 없으므로 느긋하게 일어나 엄마와 나는 오늘의 일정을 이야기하며 열심히 먹어 두어야 한다고 이것저것 먹고 있고 아빠는 그 모습을 사진을 찍는다.

 

 

 

우리가 묶었던 호텔방. 체크아웃 하기 전에 한 컷.

 

 

 

시내를 돌아다닌다. 겨우 3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호텔 근처이기도 하고, 다 돌아다닌 곳이라며 우리는 이제 지도도 없이 자유롭게 다닌다. 뒤에 보이는 것이 아야 소피아.

 

 

 

 

 

 

 

이스탄불에서 제일 큰 시장이라는 그랑바자(Grand Bazzar)에 들러 스카프니 뭐니 식구들을 줄 이것저것 선물들을 산다. 시장은 야단법석이다. 상인들은 흥정을 하고, 동양인만 보면 곤니찌와, 안녕하세요, 안 비싸요, 할아버지...를 외친다. 한국 사람들이 많긴 많은가 보다.

 

 

 

 

 

길을 걷다 우연히 사람들이 추천해준 과자점인 KOSKA에 들러 엄마 주변 사람들의 선물용으로 Turkish Delight를 산다.

 

 

 

길거리에 있는 어느 사원인가에 들러, 사원에 들어가기 전에 발을 씻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잠시 가만히 앉아 있기도 하고...

 

 

 

 

 

지도에도 없는 어느 사원의 뒷마당길을 그냥 씩씩하게 걸어간다. 시장에서 산 선물꾸러미가 담긴 비닐 봉투들을 들고, 길을 잃을까 염려도 없다. 길을 잃으면 택씨를 타면 그만.

 

 

 

 

 

 

 

엄마와 아빠는 오늘 참 즐겁고 여유로워 보인다. 오늘이 마지막 여행이라는 생각과 곧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안도와 아쉬움이 섞인 여유일까. 여행이 어느덧 일주일이 지나니, 엄마 아빠는 이제서야 여행에 익숙해지신 듯 하다.

딸래미가 영어 쓰는 것에 익숙해져 더 이상 "무슨 일이래니" 종류의 걱정어린 시선을 보내지 않으며, 택시비나 뭐나 작은 돈 쓰는 것에 연연해 하지 않으며, 비용을 지불하고 무엇을 하는 것은 다 그만큼의 값어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한편, 낯선 곳을 지도를 보지 않고 돌아다니는 즐거움을 서서히 알아가게 되는 것 같았다.

 

 

 

 

 

 

 

 

 

 

"엄마, 여기가 우리가 고등어케밥 먹으러 왔던 곳이었잖아... " 이제 왠만한 중심부는 다 왔던 곳이다.

 

 

 

 

 

어느 사원 앞에서, 당당한 포즈의 아빠.

 

 

 

선착장 근처에 있는 Spice Bazzar, 향신료 향이 가득한 이 시장에서 엄마는 아빠를 위해 말린 무화과 1kg을 14리라에 샀다. 6개월 보관이 가능한 이 진공포장은 곧 한국행 비행기에 실릴 것이다.

 

 

 

 

 

 

 

시장의 뒷골목은 또 다른 시장이다. 여기서 나는 3리라, 우리 돈으로 2천원씩 하는 알반지들을 용케도 건졌고, 이 뒷골목의 활기찬 남자들의 박수와 안내에 이끌려 길가 테이블에 앉아 샌드위치와 핫도그 등을 먹었다. 종업원 중 하나는 아빠를 화장실까지 친절히 안내해 주었고, 음식은 맛있었고, 게다가 저렴하기까지 했다.

 

 

 

 

Hamam은 오스만투르크 시대의 오래된 터키 전통 목욕탕이다. 우리는 미리 호텔을 통해 몇 백년 전통을 자랑한다는, 그리고 실제로 술탄이 와서 목욕을 하기도 했다는 - 믿거나 말거나지만 - 유명한 Hamam을 예약해 두었다. 호텔에서 기다리던 우리를 픽업한 차는 과연 차가 다닐 수 있을까 싶었던 구시가지를 구불구불 기어오르더니 우리를 내려 주었다.

 

 

 

가족 단위 손님만 받는다는 그 Hamam은 수영복 같은 기본적인 옷을 입히고는 모두 탕에 들여보낸 후 - 7명 정도가 정원이다. 우리 식구 3명 외에 다른 가족이 2팀이 더 있었다 - 넓고 뜨끈뜨끈한 온돌 위에 몸을 지지게 만든 후, 한 사람씩 불러 가볍게 때를 밀어준다. 그리고는 흰 가운을 입히고 머리에 흰 수건을 씌우고는 어느 방인가 들여보내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것이 프로그램이었다.

흰 가운을 입고 흰 수건을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사람같이 동여매 주니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엄마와 아빠의 키를 합쳐 놓은 것 같은 덩치 큰 덴마크 가족과 나란히 앉아 우리는 어색하게 차를 홀짝거렸다. 그 가족도, 우리 가족도 웃음이 나서 서로 민망해하며 키득키득거렸다.

 

 

 

 

 

 

 

 

어둠이 내리자, 우리는 이제는 익숙해진 호텔 뒷골목길을 천천히 걸어 짐을 챙기고 불러 놓았던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간다.

 

 

 

 

출국심사대에 들어가기 전에 아빠가 나를 위해 기도해 준다. 비록 다른 일행을 곧 만날 것이고 딸래미 혼자 다니는 여행은 아니긴 하지만 20여 일 더 있을 나머지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기도다.

엄마는, 에효... 걱정이다..하고 한숨을 쉰다. 엄마! 나는 엄마랑 아빠가 더 걱정이거든?! 나는굳이  말하지는 않았지만, 엄마와 아빠가 출국심사대 넘어 게이트 305를 잘 찾아 한국행 비행기를 잘 타는 게 걱정이다. 한국 가는 비행기니까 한국 사람 많을 거야. 게이트 305만 잘 따라가라구. 엄마 아빠는 내가 걱정, 나는 엄마 아빠가 걱정이다. 출국심사대를 들어간 엄마와 아빠가 손을 잡고 걷는 게 저 멀리서 보인다. 순간 픽, 웃음이 나면서도, 핑, 눈물도 났다.

 

 

 

 

터키란 나라.

어둑해져 더욱 아름다운 검푸른 하늘, 사원의 불빛, 광장의 차가운 기운, 아무데서나 쓰러져 자고 있는 개들, 달리는 트램, 신호를 무시하고 길을 건너는 사람들, 돌아다니며 무엇인가를 파는 사람들, 호텔 직원들의 멀끔한 얼굴, 거리의 수염이 거친 남자들, 헤진 양복을 입은 노인들, 강이 아니라 바다여서 더욱 세차게 흔들리는 파도와 고등어케밥을 구워 팔던 배,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제복을 입는다면 더욱 아름다울 것 같은 이 남자들, 낡은 문짝, 더할 나위 없는 또릿한 햇살, 기독교와 이슬람의 묘한 역사를 가진 이네들, 교회이기도 했다가 사원이기도 했다가 박물관이 된 성당을 가진 사람들, 기도 시간이 되었는데도 길거리에서는 아무도 기도하지 않는 날라리 이슬람 민족, 반 이상은 라마단을 지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을 버리고 타 종교로 개종하면 살 수 없는 나라...

이 변화무쌍하고 역동적인 그들의 역사와 이야기 때문에 나는 이 나라와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에 다시 오고 싶을 것 같았다. 다시 오게 된다면, 2011년 9월 28일. 오토만 임페리얼 호텔 방명록을 찾아보면서 나는 아빠와 엄마와의 즐거웠던 여행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호텔을 나서기 전 방명록에 뭐라뭐라 쓰시는 우리 아빠.

 

 

 

Hamam의 방명록에도 아빠는 글을 남겼다. 아빠는 거기에 김영석, 강복례, 김은아..라고 우리 이름을 적었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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