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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2) 시내 가이드투어 - 터키여행 여섯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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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여행 6일차 - 이스탄불 2일차.

 

오늘은 시내가이드 투어를 받는 날. 카파도키아에서 받았던 전단지를 보고 다행히 시내 가이드를 예약했다.

오늘의 일정은 돌마바흐체 궁전 (Dolmabachce Palace), 술탄아흐멧 사원(Sultanahmet Camil) - 일명 블루모스크, 아야 소피아(Aya Sofya Musuem), 히포드롬 광장(Hippodrome), 그리고 보스포러스Bosphorus 유람선으로 이어진다. 바쁜 하루다.  

 

 

이 분 아직도 터키에서 가이드 하고 계실까나. 이 여행이 벌써 2011년 9월 일이다.

 

 

 

 

돌마바흐체 궁전 (Dolmabachce Palace)

 

트램을 타고 가이드를 만나러 간다. 오늘은 가이드 투어의 손님이 꽤 많다. 대략 20명 정도 되는 것 같다.

 

 

 

 

톱카프 궁전이 예전 궁전이라면, 돌마바흐체 궁전은 신궁전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베르사유 궁전을 포함, 서양 문물에 압도되었던 술탄이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위세를 자랑하기 위해 13년에 걸쳐 1만4천톤의 황금과 4만톤의 은을 쏟아 부어 만들었다.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선물했다는 4m 규모의 전 세계 최대라는 크리스털 샹들리제, 러시아 황제 짜르로부터 선물 받은 곰가죽 박제, 사우디아라비아 왕으로부터 온 거대한 코리아 상아에, 중국 황제로부터 도착한 거대한 도자기까지... 제국주의 시대 제왕들로부터 온 선물이 자랑스럽게 전시되어 있다.

세계 최대의 샹들리제가 걸려 있는 거대한 연회홀에서는 무도회가 열렸고, 무도회에 참석한 귀부인들이 한겨울에도 춥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연회 3일 전부터 바닥의 온돌을 달구어 난방했다고 한다. 파리에 갔을 때, 궁전 같은 건 관심이 없어 베르사유 궁전에 갈 생각조차 없었는데, 이걸 보니 나중에 베르사유도 한번 가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화려함만으로도 눈이 돌아간다.

 

 

 

술탄의 개인 공간은 일부러 대리석이 아니라 나무 조각을 색색깔로 짜집기한 마루로 만들었다. 걸을 때마다 소리가 나도록 해서 혹시 모를 암살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방의 벽면을 꽉 채운 거울이 방방마다 있다. 이 또한 암살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함이란다. 

 

천장이 높은 방의 벽을 꽉 채운 거울에 비친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괜시리 근사해 보인다. 낯선 풍경이어서 그럴 것이다. 생각해 보니 천장이 높은 방의 벽의 꽉 채운 거울을 나는 본적이 없다. 나를 포함해서 왕을 접견하기 위해 모인 사람인양 느껴진다.

 

 

 

 

 

 

 

점심은 시내 전망 좋은 식당에서 터키식 케밥을 먹고,

 

 

 

술탄아흐멧 사원 (Sultanahmet) - 블루모스크

 

여전히 기도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현재 진행형의 사원. 사람들은 관광객에 익숙해져 신경도 쓰지 않으며, 기도하거나 조용히 앉아 코란을 읽고 있다. 블루모스크라고도 불리는 이유는 빛이 들어오는 천정이 푸른빛을 띠고 있기 떄문이다.

 

 

 

 

 

 

 

 

 

 

 

 

사원 밖의 모습

 

 

 

여기는 로마 시대에 있었던 지하 물 저장소다. 식수로 사용했던 물의 수질을 측정하기 위해 물고기를 놓아 길렀다고 한다.

 

 

 

 

 

 

 


아야 소피아 (Aya Sofya Museum). 학교에서 우리는 동로마 제국의 성 소피아 성당으로 배웠지만, 성당에서 사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현재는 양 종교 간 측의 합의로 공식적으로 중립적인 의미로서의 뮤지엄으로 불린다. 

 

가이드는 이 성당의 역사에 대해 사전 설명을 해 주고 우리를 들여보낸다.

 

 

 

 

 

교과서에서 배울 때는 이렇게 어마어마한 것인줄 몰랐다.

 

기원후 500년, 그러니깐 6세기 경, 동로마 제국이 이 성당을 만들 당시, 이 성당의 모든 천장과 벽은 황금 모자이크로 장식했다고 한다. 그 이후 이슬람 세력이 이스탄불을 점령하고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이후, 이들은 이 성당을 모욕하는 방식으로 성당을 폐허로 만들기 보다는 성당을 자신들의 이슬람 사원으로 바꾸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황금 모자이크를 회반죽으로 두껍게 발라 버렸다.

 

저 노란 벽은 모두 회반죽이다. 이슬람 사원으로 쓰여졌음을 보여주는 장식품들도 여전히 붙어 있다.

 

 

 

지금도 회반죽을 제거하고 회반죽 속에 잠자고 있을 황금 모자이크를 복원하는 작업이 계속 진행중이다. 월요일 휴관에만 한 조각씩, 한 조각씩, 석회 벽을 뜯어내니 작업은 더디고, 몇 백년이 걸릴 지 모를 일이다.

 

일부 복원된 황금 모자이크


 

 

 

 

 

 

나는 개인적으로 이 성당이 마음에 들었다. 개인의 취향 문제겠지만, 성 베드로 성당과 자꾸 비교가 되었다. 이 성당이 만들어졌던 6세기. 나에게는 디테일을 버리고 한 가지에 집중하며 선이 굵고 정직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이 성당에게서, 게다가 성당의 그 큰 규모까지 더해져 땅 속 깊은 곳에서부터의 단단한 견고한 힘이 느껴졌다.

르네상스 시대, 베드로 성당은 얼마나 정교하고 디테일한가. 그 화려하고 섬세한 장식들과 조각들 하며.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는 어지러워 현기증이 났다. 그 곳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구석은 있지만 시선을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어지러움이 있다. 그곳에서는 시끄러운 속내가 느껴진다. 

 

 

 

 

 

 

 

 

나는 이 성당을 다시 찾고 싶었다. 가로가 넓은, 이 투박하지만 정직한 공간에서, 너른 대리석 바닥에 주저 앉아 - 지진으로 그 대리석 바닥은 울퉁불퉁해 지긴 했지만 - 하루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베로나의 가로가 넓은 중세에 지어졌던 교회가 생각났다.

 

이 교회는 500년대에 지어져, 그 후로 약 1천년 동안 최고의 교회였다가, 이후 석회벽이 발리우고 교회 밖에 이슬람 사원임을을 상징하는 4개의 기둥이 세워지면서 알라를 섬기는 사원으로서 그 역할을 했다. 그 만큼 많은 일을 경험한 성당, 사원, 그리고 뮤지엄이다. 복원되어야 하는 것은 단순한 황금 모자이크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될 날이 올까? 정치를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야 소피아 앞에서..

 

 

 

마무리는 보스포러스 유람선 투어. 안 하면 그냥 섭섭할 것 같았다. 여행은 어느덧 막바지. 오늘은 이스탄불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엄마도 아빠도 나도 조용히 강과 같은 바다를 바라본다. 이 해협을 사이로 아시아와 유럽이 나뉜다지?

 

 

 

 

 

 

 

 

 

 

 

 

배에서 내려 EMINONU 역으로 간다. 사람들이 이스탄불에 가면 꼭 먹으라고 했던 고등어 케밥 BALK 케밥을 먹기 위해서다. 역 선착장을 길게 늘어선 케밥 가게에서는 숯불에 굽는 음식 냄새가 진동을 한다.  

우리 식구는 같이 투어를 받았던 분들 중에서 혼자 오신 아저씨와 동행했다. 나홀로 여행자였던 적이 많았던 나는 기꺼이 그 분과 동행했고, 아저씨가 저녁을 쏘셨다. 20리라의 행복. 

 

가게 주인은  우리가 한국인인 것을 단박에 알아채고는 우리에게 와서, 서툰 영어와 한국말로 본인 할아버지가 한국전 참전 용사이고 115살까지 사셨다고 자랑한다. 우리 아빠는 아빠의 장기인 한국말로 대화하기를 시도하신다. 그러냐고. 알았다고.. 그 아저씨가 모자를 벗자 대머리이다. 아빠도 화답한다는 의미에서 "나도 그렇다"고 - 역시 한국말로 - 모자를 벗어 주었다. 터키 사람, 한국 사람, 우리는 모두 크게 웃었다.

 

 

 




고등어 케밥은 정말 맛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터키에서 먹은 케밥 중에서 제일 맛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시 명물인 데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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