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나에서,
새벽 1시까지 오페라를 보고, 새벽 6시에 유스호스텔을 떠나는 강행군으로 아침 일찍부터 엄청 서둘러 피렌체에 도착했음에도,
그리고 시장도 보고, 두오모도 보고 했음에도
내가 경험한, 또는 내가 기억하는, 첫날의 피렌체는...
로렌조 Laurenzo 성당, 그것 한 가지인것처럼 느껴진다. 두오모도 아니다.
유스호스텔 Plus Flroence는 기차역에서 10분 걸어가는 거리다.
그 거리는 좁고, 번잡했다.
나는, 그 거리를 걸으며 자꾸 어지러워졌다. 햇살이 부담스럽고, 사람들의 왁자지껄이 거슬렸다. 그래도 나는 시간이 없는 여행객이었으므로 꾹 참았다.
그리고 지도를 보고 가야할 곳을 점찍었다. 두오모 성당, 미켈란젤로 언덕, 자자 시장 등등...
시장길...
사실 피렌체의 일반 길거리도 나에게는 이런 느낌이었다.
지금은 사진으로 보면 그리운데, 막상 그 당시에는 피곤했다. 나는 휴식이 필요했었나보다. 피렌체는 피곤한 나에게는 매력을 보여주지 않았다.
시장은 이탈리아의 모든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 설악산을 가면, 온갖 산에 대한 기념품과 함께 불국사와 돌하루방을 모두 팔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졸았었나....?
시간은 금방 간다. 벌써 2시간이 흘렀다. 이런...
여긴 시간이 멈춘 곳이다.
내가 피렌체를 좋아한다면, 그건 바로 여기 로렌조 교회와 그 다음날 본 베치오 다리 때문일 거다.
우피치에서의 하루, 여기
자, 사실 나는 여길 우피치 미술관 때문에 왔고,
우피치 미술관은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때문에 왔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줄을 서는 시간이 아까워, 나는 한국에서 10유로나 더 주고 미술관을 예약하고 왔다. 그러니깐 오늘 하루의 여정은, 내일 아침 일찍 우피치 미술관을 방문하기 전의 일정일 뿐이다,
라고 이야기하면, 피렌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욕을 하리라.
요즘은 피렌체를 거점으로 The Mall더 몰에 당일치기 쇼핑을 다녀오는 사람들에, 친꿰레떼에 다녀오는 사람들까지, 쇼핑에 근교 도시를 다녀오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유스호스텔에서 만난 친구는 피렌체에서만 10박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피렌체는 그냥 쉬엄쉬엄 늦잠을 잔 날만 다니고 나머지는 근교 도시를 여행하고 있었다. 특히 친꿰레떼를 다녀온 사람들은 입을 모아 여기는 머스트 고!라고 말했다. 여행에도 트렌드라는게 있다. 그리고 요즘 친꿰레떼가 소위 말하면 뜨고 있다. 아마 몇 년이 지나면 그 곳도 지금의 순박한 맛을 잃어 프라하 같은 도시가 될지도 모른다. 그건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태도에 달렸지만 말이다. (미안, 프라하. 난 왜 자꾸 프라하에 대해 나쁜 말을 하게 되는 걸까)
도시에 대한 인상은 참 의외의 것이 좌우한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7유로짜리 파스타 샐러드와 파스타보다 비싼 생과일 쥬스를 먹었는데, 배탈이 났다. 20유로면, 우리 돈으로 3만원이다.
나는, 가뜩이나 비싼데 이게 뭔 일이냐며 신경질이 났다. 근데 그게 가격표도 안보고 생과일 주스를 시켜서 상처가 더 컸던거 같다. 그게 파스타보다 비쌀줄이야...
그렇다고 해도, 그게 단순히 비싸서, 또는 배탈이 나서 내가 신경질이 났던 것일까. (배탈은 아마 신경질이 나서 났을 것이다. 배탈이 나서 신경질이 났던 건 아닐 것이다. 물론 이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긴 하지만...)
나는 파리에서, 그보다 더 비싼 샴페인을 나도 모르게 시킨 적이 있다. 가격을 몰라서였다. 나중에 알았다, 그게 정식보다 더 비싼 샴페인이라는 것을. 하지만, 난 그때 화가 전혀 나지 않았었다. 그냥 에잇, 하고 즐길 수 있었다.
물론 그 곳은 두오모 성당 바로 앞에 있는 레스토랑.
비쌀만도 한데, 나는 그래도 신경질이 나는 거다. 그건, 선택의 폭이 좁은 도시에 대한 불만이다. 그냥 우연찮게 들어간 레스토랑에서의 행운 - 베로나에서 내가 만났던 - 을 허락하지 않는 도시가 별로 맘에 들지 않는 거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우리 도시가 사람들에게 우연찮은 행운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그런 도시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대도시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보스톤이 좋은 이유는 그 도시의 레스토랑에서 얻은 뜻밖의 행운 때문이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그 타겟이 오가는 관광객이 아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도시가 때때로 즐거움을 준다면, 그 도시의 관심사가 그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면, 우연찮게 며칠 들르는 관광객도 그걸 느끼게 된다.
도시들이여, 제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주인공이게 했으면...
그 만큼, 관광객들이 다니는 포맷화된 장소 외에도 이런저런 도시의 매력이 많이 발산되었으면...
두오모 성당..
놀랍게 화려하고 하도 입체적이어서 막 만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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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오모 꼭대기에 올라가는 길.
영화가 죄다.
내가 기대했던 view는 내가 두오모 꼭대기에서 본 피렌체 전경이 아니라, 두오모 꼭대기에서 피렌체 전경을 보고 있는 나를 잡은, 헬리콥터 카메라가 잡은 뷰다.
그건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주인공을 잡았던 뷰가 그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좀, 뭐랄까, 시시한 생각이 들었다.
두오모를 내려오니 4시.
나의 원래 계획은 유스호스텔에 들러 2시간만 자고 일어나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라 그 유명하다는 석양을 보는 건데, 자고 일어나니 저녁 8시.
근데, 나는 또 아쉽지가 않았다. 앞으로 또 올 것이기에? 아니다. 내일의 우피치가 나를 부르면 모르겠지만, 난 더 여길 올 거 같지가 않다. 아마 더 몰을 가던가, 친꿰레떼를 가기 위해 들를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도 참, 아쉽지 않은걸 보면, 내가 베니스를 또 와야 겠다고 결심한 건, 보지 못한 베니스의 석양 때문이 아니라 이미 본 베니스의 모습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와야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것은 보지 못한 도시의 모습 때문이 아니라, 이미 본 도시의 매력 때문일 거다.
나는 덕분에 초저녁부터 푹 자고, 근처에서 대충 밥을 먹은 뒤 다시 잤다.
푹 자고 내일 새벽같이 일어나 우피치 미술관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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