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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 신을 벗고 올라간 청암정

낯선 곳에서 놀기/우리나라 좋은나라

by sundayeunah 2014. 8. 29.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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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봄 3박 4일.

영주 부석사 -> 소수서원(선비촌) -> 영주 무섬마을 (숙박) -> 봉화 (닭실마을 옆 청암정) -> 봉화 청량산과 청량사 -> 안동 도산서원 -> 안동 금포고택 (숙박) -> 안동 시내 -> 병산서원 -> 하회마을 (숙박) -> 올라오는 길에 속리산 법주사

 

여행갈 때 참고하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카카오페이지 "지극히 주관적인 여행"이다. 일종의 유료 잡지인데 이것저것 찾아보기 귀찮을 때 필요하다 싶으면 유료결제까지 한다. 국내 여행지를 '주관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그 to go list나 to do list가 거슬리지 않는 것을 보면 나의 주관성과 지주여(줄여서 이렇게 부른다)의 주관성이 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대중적인 여행지가 아닌 봉화편을 1박2일, 혹은 2박3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보면...

봉화를 오고 싶었던 것은 순전히 청량사 때문이었다. 청양사와 청량사 가는 길을 소개한 어떤 글을 읽었는데 깊은 산속을 걸어들어가고 있는 도인, 그리고 그 풍경이 곧 그림이 되는 산수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던 기억이 있어서였다. 그것이 도인인지 아니면 도인처럼 깊은 산속을 그리 열심히 걸었다던 퇴계 이황의 이미지였을지도 모르겠다. 퇴계 이황이 걸었다는 퇴계이황길(예던길)이 청량사에서 내려가면 안동 가는 길로 연결된다.

아무튼, 청량사를 가고 싶어 봉화를 여행지로 선택한 나는 지극히 주관적인 여행을 뒤졌고 지주여가 추천한 봉화 여행지로 석천정사가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계곡에 있는 정자 같은 것으로 이해했다.

가기로 마음먹고 네비를 찍었는데 어째 좀 이상하다. 박물관 같은 건물앞에 주차를 하고 어찌해야 할까를 잠시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옆에 무슨 문이 있다.

 

 



 

 


 

 

알고보니 여긴 청암정이라는 정자. 조선 중종 때의 문신 충재 권벌 선생의 유적지라 한다. 

동이니 뭐니 하는 사극도 많이 찍었다고 하는 정자였다. 소박하고 고요한 것이 참 마음에 들었다.

 

 

 

 

 

 

 

문간채의 뒤편에 앉아 잠시 쉰다. 오늘은 휴일인데도 사람은 없고 바람은 시원하고 무엇보다도 마루가 맨질맨질, 사람의 손길을 많이 간 나무이다. 

아무도 찾는 이가 없어 갈라지고 틈이 거칠게 벌어지는 마루가 아니다. 관리인이 의무적으로 걸레질하고 청소하는 그런 마루가 아니다. 사람들이 와서 계속 앉고, 쓰다듬고, 엉덩이를 비비고 했을 마루이다. 마을사람들도 종종 와서 앉아서 노는 모양이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사람 사는 집 같은 모양을 하고 있을수가 있을까.

 


 


 

 

 

 

 

 

 


 

 


정자 위로 올라가니, 마루에 신을 벗고 올라가세요라는 표지가 있다. 예전에 미국의 어느 박물관에 갔을 때 링컨 대통령의 앉아 있는 좌상을 화장실 앞에 만들어놓고는 - 불경하게도 화장실 앞에 동상을 - please touch him이라고 씌여져 있던 표지판에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은 링컨의 손을 하도 만지작만지막해서 손 부분만 노랗게 청동이 벗겨져 있었다.

항상 들어가지 마시오에만 익숙했던 우리인데, 이 시골 어느 외딴 정자에서 신을 벗고 기꺼이 올라가라니. 역시 마루는 맨질맨질하다. 경복궁 근정전의 거칠게 갈라진 마루가 아니다. 사람들이 앉고 눕고 비비니 이 정자는 늙지 않는다.

나도 기꺼이 올라갔다.

 

 

 


 


 


 


 


 


 


 

청암정에서 노닥노닥했던 이유는, 석천정사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청암정 앞에 차를 세우고, 봉화군청에도 전화를 해 보고 마을 주민들께도 여쭤봐가며 석천정사로 가는 길을 물어물어 드디어 계곡 입구로 진입했다. 바로 저 길을 따라가면 된다고 했다. 


 

 

징검다리를 건너 계곡으로 들어가는데, 딱 앞에 보이는 표지판. "이 길은 위험하니 밤에는 부녀자의 출입을 삼갑니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혼자 길 떠나는 부녀자. 밤이 아니어서 괜찮다는 건가, 아니면 그래도 위험하다는 건가. 명확한 가이드가 없네... 하면서 슬금슬금 길을 가는데 가면 갈수록 어째 으스스하다.


 


 


 

 

자고로 산은 혼자 가도 무섭진 않았다. 높을 곳을 오르는 수고를 하는 사람들은 착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말도 안되지만 나 혼자만의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긴 계곡길... 게다가 양복바지를 입은 어떤 아저씨가 혼자 저만치서 가고 있네...? 뭐 아마 석천정사 관리인 아저씨였을지도 모르지만...

 

자꾸 불안한 마음에 뒤를 쳐다보게 되었을 때쯤, 아니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렇게 불안해하면서 거길 찾아가야한단 말인가, 생각이 들어 발걸음을 돌렸다. 저 멀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니 마음도 한결 가볍다. 난 혼자 여행하는 부녀자잖아... ㅋㅋㅋ

저 멀리 보이는 마을은 봉화의 명물 중 하나인 닭실마을. 무섬마을을 다녀온 나는 닭실마을은 패스. 청암정에 앉아 노닥거리고 시간을 보내다 이제 청량사로 출발한다.

 

 

 

 

 

 뽀얀 녹색으로 올라오는 논을 바라보니 더욱 싱그러운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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