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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Madrid 프라도Prado 미술관 -- 스페인 아홉째 날

속에서 놀기/미술관에서 놀기

by sundayeunah 2013. 10. 10.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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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 20여 일에 걸친, 모로코와 스페인 여행의 종착지.

 

우리는 마드리드Madrid에 와서 순식간에 가난한 여행자가 되었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과 비교했을 때 숙박비도 음식값도 비쌌다. 여행을 통털어 가장 비싼 숙박료를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설은 가장 가난했다. 대도시의 한 가운데 있는 호스텔이니, 어쩔 수 없다.

 

 

마드리드의 첫 날은 프라도Prado 미술관.

나는 마드리드를 프라도 미술관 때문에 왔다. 유럽 미술관 기행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다. 몇 년 전에 바르셀로나를 들렀을 때 마드리드를 들르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기에 이번에는 꼭 들러야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프라도의 첫인상은 가로가 넓은 런던의 테이트 모던을 떠올리게 한다. 그게 참 마음에 든다. 10시 무렵, 프라도 안의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먹었다. 문 닫는 시간은 저녁 7시. 시간이 많으니 쉬엄쉬엄 느긋하게 다닌다.

 

벨라스케스Velázquez와 고야Goya의 그림은 인기가 많아 그 방에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인다. 17세기 스페인 회화가 있는 방 같은 곳이 휴식을 취하기에 적당하다. 인적이 드물고 의자도 있다. 

 

 

Velazquez, Las Meninas 시녀들.

그림을 직접 보니 왜 유명한지 알겠다. 그 그림에 대한 여러가지 특징들 - 시선의 교차, 시선으로 그림을 지배하는 필립 4세 부부 등등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그 그림은 그렇고 그런 초상화들 - 말 타고 있는 남자, 화려한 드레스 자락을 어여쁘게 잡고 있는 어린 공주, 한 때는 그런 수줍은 공주였겠지만 이제는 여왕이 된 여인, 위풍당당 말 위에 올라앉은 여왕과 왕, 혹은 둘 다... - 사이에서 벨라스께스의 그림, 시녀들은 단연 시선을 끈다.

 

 

 

 

우선 왼편의 캔버스 그림 - 사선으로 그림 속을 가로지르고 있을 큰 선 -이 다른 그림들에는 없는 것이어서 낯설기 그지 없고 신선하다.

그 옆의 공주, 시녀, 시종, 개, 개를 발로 차는 꼬마 여자애들이 과장되지 않은 포즈로, 꼭 했을 것 같은 그만큼의 동작으로만 그려져 있어 더욱 사실 같고 생생하다. 극적인 요소가 없는 것이 더 현실감을 주어서인지, 그 그림이 제일 눈에 띌 수 밖에 없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의 책을 읽고 와서일까. 오른쪽 못생긴 그녀, 난쟁이일 것으로 추정되는 - 애가 그런 얼굴일 수 없는 그런 얼굴을 가진 - 그녀가 눈에 밟혔다. 시녀들은 바쁘고 여자애는 개를 괴롭히느라 여념이 없는데 그녀는 자기가 이 초상화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오직, 마르가리타 공주와 그녀만이 정면을 응시한다(화가인 벨라스케스 자신을 제외하면).

어여쁜 우리의 주인공인 마르가리타 공주가 정면을 응시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데, 주인공도 아닌 못생긴 그녀가 정면을 응시하는 것은 이상하다. 익숙하지 않다. 시녀의 복장도 아니고, 못생긴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복장을 했다. 시녀들도 하지 않은 목걸이까지 했다. 난 그녀에 대한 약간의 단서라도 찾고 싶어 그림의 디테일을 뒤지고 오디오 가이드를 듣고 또 들었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의 신분은 분명 마르가리타 공주처럼 정면을 응시해도 되는 신분이리라, 라고 나는 노트에 썼다. 그리고 박민규의 책이 아니었다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 지도 모르는 헉 스러운 외모의 그녀에 대해 그녀의 일생을 상상해 보았다. Ronda에서 읽은 박민규.

(나중에 검색을 해 보니, 그녀는 마리발보라라는 여자 광대였다고 한다. 관련 글)

 

 

 

 

고야Goya.

민중의 삶, 일, 놀이, 휴식, 사냥, 사랑, 구애, 가족을 그렸다.

술 취한 친구를 들고 가는 두 남자. 연습용으로 그린 조그만 초안에서는 익살스럽게 웃던 두 남자가, 큰 그림에서는 약간은 슬픈, 조금은 안 됐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 작은 그림이 아니었다면, 무척 슬픈 그림으로 오해할 뻔 했다. 한 마을에 살았던 이 두 남자의 부탁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Goya, El alnanil herido, 1786-87

 

 

 

Goya, El alnanil borracho, 1786

 

 

 

 

 

웃고 떠드는 활기찬 젊은이와 농촌의 삶, 민중의 생활을 그렸던 고야는 1700년대 후반에 궁정화가가 되어 화려한 복장 속에 감추어진 무능과 부패를 그리더니, -- 그림 설명에는 psychological character라는 표현이 자꾸 나오며, 고야의 그림에서는 어린 공주의 초상화를 그릴 때 느껴졌던 벨라스께스의 따뜻한 시선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고야는 본인이 싫어하는 피사체를 그릴 수 밖에 없는 슬픈 궁정화가였던 셈이다.

 

 

Goya, The Family of Charles IV, 1800

 

"이것은 왕가에 대한 능멸인가. 수석 궁정화가가 초상화 제작을 위해 화실을 찾아온 왕실 가족을 일렬로 세워놓고는 침을 뱉은 꼴 아닌가. 장엄하지도, 우아하지도 않은 저들은 스페인의 왕 카를로스 4세(1748~1819)일가다." 중앙일보 권근영 기자의 칼럼, 권력은 가고 예술만 남았다.

 

 

 

1800년 들어 귀머거리가 된 그의 말년에는 House of the Deaf Man에 살면서 인간에 대한 절망으로 가득차 버렸다.

 

 

 

Goya, the great he - Goat, 1820-23

 

 

Goya, Fight to the Death, 1820-23

 

 

 

누가 고야에게 화사한 밝은 웃음을 제거해 버렸을까. 고야의 그림은 왜 그렇게 깜깜하고 어둡고 강해져 버렸을까. 왜 그 안의 인간들은 정신이 나가 있거나 무언가에 홀려 있는 표정으로 들떠 있거나, 두려움에 가득차 있는 걸까.

검은 염소가 사람을 다스리고, 두 남자는 무릎까지 땅에 파 묻혀 몽둥이를 휘두르며 죽을 때까지 싸운다. 이제 그 싸움은 처음 왜 시작되었는지, 목적도 이유도 없고 그저 누군가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지만, 결국은 점점 땅 속으로 파묻혀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결국은 움직일 수 없다. 끔찍하기 그지 없는 삶.

 

Goya, Saturn, 1820-23

아들을 잡아 먹는 새턴. 아들을 잡아먹고 있는 신, 새턴의 눈은 절대권력자의 광기와 오만함이 아니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이 일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내몰린, 두려움에 떠는 존재인 것처럼 보인다.

 

 

 

 

고야의 그림은 끔찍하고 어둡다. 비록 고야가 이 그림들을 그린 것은 그의 말년이었지만, 어두운 그 그림들은 젊은이의 절망과 분노 같은 것에 더 어울린다. 이제 나는 고야를 좋아하기에 적절한 나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 고야의 그림이 강렬하게 다가왔고 그 깊고도 과격한 절망이 좋았다. 하지만 '한 때' 좋아했었다는 지인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난 이제 고야의 검은 그림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대신 나는 술취한 순박한 마을 청년들의 한바탕 대소동을 따뜻하고 밝게 그렸던 이 젊은 청년 화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가 왜 궁정화가를 거쳐, 말년에 이렇게 검은 그림을 그렸어야 했을까,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가 더 궁금한 사람이 되었다.

 

고야의 검은 그림들은 동시대 사람들에게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의 그림은 여기저기 집과 함께 떨이로 매각되었고, 경매에 내놔 이득을 볼 생각이었던 프랑스 부유한 은행가가 결국 그림 매각에 실패하자 1881년 프라도 미술관에 기증,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El Greco.

이 그리스인은 10년도 훨씬 전에, EBS의 화가를 소개하는 어느 프로그램에서 - 교양 다큐의 나레이터로 자주 나오는 우아한 목소리의 여자 성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아직도 그 여자 성우가 '엘 그레코'를 발음하던 여운이 생각난다 - 처음 보았다. 깊은 어둠과 강렬한 명암 대비, 굵직한 터치가 무척 기억에 남았다.

나는 몰랐는데 이 그리스 사람, 1500년대 사람이다. 요즘 그림이라고 해도 믿겠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때 당시에는 인정 받지 못했던 그 거장... 에구, 후세 사람들에게 영감이나 주고...

 

그게 너무 안 됐어서, 그레코 그림 하나는 꼭 기억하고 싶었다. 마드리드의 마그네틱으로 Greco의 Knight with his hand on his chest를 샀다.

 

El Greco, Knight with his hand on his chest

 

 

 

 

 

프라도에서 본 그림들....

 

Joaquin Sorolla, And They Still Say Fish is Expensive, 1894

고기잡이 배. 부상당한 정신을 잃은 젊은 일꾼. 두 고참 중 한 사람의 아들일지 모른다. 그래도 고기 값이 비싸기에 이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 제목과 그림의 아이러니, 거기서 연상되는 고단함.

 

 

 

Daniele Crespi, The Pieta, 1623-25

 

무수히 많은 피에타가 있지만, 이 그림은 좀 달랐다.

"이제 됐습니까?" 슬픔과 원망이 뒤섞여 하나님을 바라보는 듯한 마리아의 시선. 영화 밀양의 전도연이 떠올랐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프라도에서 시간을 보냈다. 명성에 비해 감동은 적다. 18세기에 멈춰 버린 스페인의 국력, 혹은 위상을 볼 수 있어서 약간은 씁쓸하다.

아침에도 쌀쌀, 미술관은 곳곳이 쌀쌀, 나오니 이미 해가 져서 또 쌀쌀. 호스텔에 들어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내일은 좀더 여유를 가지고 오후의 태양을 쪼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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