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빨책이 상기시켜준 1990년대 나의 시 읽기

속에서 놀기/책 속에서 놀기

by sundayeunah 2013. 12. 26. 11:09

본문

 

 

 

 

자주 듣는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http://www.podbbang.com/ch/3709)에서 송년특집으로 2013년 베스트를 꼽았다. 나는 수요일을 기다려 빨책을 다운받고 며칠 간의 출퇴근길을 빨책과 함께 하곤 하는 꽤 열혈 독자이다. 방송되는 책 중 몇 개는 위시리스트에 올려졌다가 주문되기도 하고, 읽었던 책이 나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빨책 독자가 꼽은 2013년 최고의 책과 최고의 방송은 모두 줄리언 반즈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꼽혔다. 나도 작년에 읽은 책이다. (내가 읽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나는 시 방송이 참 좋았다.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이성복 시인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가 다뤄졌던 게 10월이었을 거다. 둘 다 오래 전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동진의 말대로, 우리 때는 생일이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시집을 선물하곤 했다.

얼마전부터 부모님 집과 동생 집에 흩어져 있는 오래된 내 책들을 하나씩 가져오고 있는데, 방송을 들은 후에 작정을 하고 시집들을 몽땅 가져 왔다. 시집 앞에는 나에게 시집을 선물했던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의 편지와 날짜가 적혀 있다. 우리는 이렇게 시집을 사서 표지 뒤 간지에 서명을 하고 편지글들을 남기곤 했다.

내친 김에 오래된 일기장이나 편지들을 모아 놓는 트렁크를 열었다. 거기엔 내가 그때 당시 좋아했던 시가 적혀 있기도 하고, 친구가 써 주었던 시들도 있다. 그것들을 보면서 아, 90년대 내가 이런 시들을 좋아했었지, 아련해졌다.

 

 

그 날 - 이성복

그날 아버지는 일곱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前方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驛前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未收金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愛人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 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占 치는 노인과 便桶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市內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백무산의 <꽃>과 김남주의 <돌멩이 하나>를 좋아했던 시절은 정말 20대 초반이었다. 자괴감이나 결기 같은 게 정말 많았던 시절이었다.

 

꽃 - 백무산

내 손길이 닿기 전에 꽃대가 흔들리고 잎을 피운다

그것이 원통하다 

 

내 입김도 없이 사방으로 이슬을 부르고

향기를 피워내는구나

그것이 분하다

 

아무래도 억울한 것은

네 남은 꽃송이 다 피워내도록

들려줄 노래 하나 내게 없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내 가슴을 치는 것은

너와 나란히 꽃 피우는 것은 고사하고

내 손길마다 네가 시든다는 것이다

 

나는 위험한 물건이다

돌이나 치워주고

햇살이나 틔워주마

 

사랑하는 이여

 

 

돌멩이 하나 - 김남주

 

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 한점 없고 답답하여라

숨이 막히고 가슴이 미어지던 날

친구와 나 제방을 걸으며

돌멩이 하나 되자고 했다

강물 위에 파문 하나 자그맣게 내고

이내 가라앉고 말

그런 돌멩이 하나

 

날 저물어 캄캄한 밤

친구와 나 밤길을 걸으며

불씨 하나 되자고 했다

풀밭에서 개똥벌레쯤으로나 깜박이다가

새날이 오면 금세 사라지고 말

그런 불씨 하나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 그 얼마일 거냐고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 그 얼마일 거냐고

죽음 하나 같이할 벗 하나 있음에

나 그것으로 자랑스러웠다

 

 

황지우의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도 그 때 당시 단골 시집이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마침내, 끝끝내.. 천천히 왠지 이를 조금은 악 물면서 이 시를 조용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零下) 십삼도(十三度)

영하(零下) 이십도(二十度) 지상(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起立)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零下)에서

영상(零上)으로 영상(零上) 오도(五度) 영상(零上) 십삼도(十三度) 지상(地上)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90년대 나의 시는 기형도의 시들이다. 그 시집을 읽었을 때의 서늘함과 막막함, 소름끼치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나는 그의 시를 소리 내어 읽곤 했다. 긴 시는 빨리, 짧은 시는 천천히 소리 내어 읽었다. 특히 기형도의 <위험한 가계>를 소리내어 읽으며 눈물이 났던 어느 밤도 생각난다. 나는 "뿌리가 질기고 열매를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심을 작정이다"라는 아버지의 말에 펑펑 눈물이 났다. 글쎄, 왜 그리 슬펐을까. 뿌리가 질기고 열매를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심어야 했던,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따지거나 고민할 수 없었던 우리 아버지 세대를 떠올려서였을까. 뿌리가 질겨서 쉽게 뽑혀지지 않고,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자식 세대에 대한 소망이 느껴져서였을까. 이 시를 읽으면서 나도 뿌리가 질기고 먹을 수 있는 열매가 되는 삶이었으며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위험한 가계·1969 - 기형도


1

그 해 늦봄 아버지는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이 쓰러지셨다. 여름 내내 그는 죽만 먹었다. 올해엔 김장을 조금 덜 해도 되겠구나. 어머니는 남폿불 아래에서 수건을 쓰시면서 말했다. 이젠 그 얘긴 그만하세요 어머니. 쌓아둔 이불을 등을 기댄 채 큰 누이가 소리질렀다. 그런데 올해에는 무우들마다 웬 바람이 이렇게 많이 들었을까. 나는 공책을 덮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잠바하나 사주세요. 스펀지마다 숭숭 구멍이 났어요. 그래도 올 겨울은 넘길 수 있을게다. 봄이 오면 아버지도 나으실거구. 풍병(風病)에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잖아요. 마늘을 까던 작은 누이가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지만 어머니는 잠자코 이마 위로 흘러내리는 수건을 가만히 고쳐매셨다.

 

2


아버지. 그건 우리 닭도 아닌데 왜 그렇게 정성껏 돌보세요. 나는 사료를 한 줌 집어던지면서 가지를 먹어 시퍼래진 입술로 투정을 부렸다. 농장의 목책을 훌쩍 뛰어넘으며 아버지는 말했다. 네게 모이를 주기 위해서야. 양계장 너머 뜬, 달걀 노른자처럼 노랗게 곪은 달이 아버지의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이리저리 흔들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팔목에 매달려 휘 휘 휘파람을 날렸다. 내일은 펌프 가에 꽃 모종을 하자, 무슨 꽃을 보고 싶으냐. 꽃들은 금방 죽어요 아버지. 너도 올 봄엔 벌써 열 살이다. 어머니가 양푼 가득 칼국수를 퍼담으시며 말했다. 알아요 나도 이젠 병아리가 아니에요. 어머니. 그런데 웬 칼국수에 이렇게 많이 고춧가루를 치셨을까.

 

3


방죽에서 나는 한참 기다렸다. 가을 밤의 어둠 속에서 큰 누이는 냉이꽃처럼 가늘게 휘청거리며 걸어왔다. 이번 달은 공장에서 야근 수당까지 받았어. 초록색 츄리닝 윗도리를 하나 사고 싶은데. 요새 친구들이 많이 입고 출근해. 나는 오징어가 먹고 싶어. 그건 오래 씹을 수 있고 맛도 좋으니까. 집으로 가는 길은 너무 멀었다. 누이의 도시락 가방 속에서 스푼이 자꾸만 음악소리를 냈다. 츄리닝이 문제겠니. 내년 봄엔 너도 야간고등학교라도 가야한다. 어머니. 콩나물에 물은 주셨어요? 콩나물보다 너희들이나 빨리 자라야지. 엎드려서 공부하다가 코를 풀면 언제나 검뎅이가 묻어나왔다. 심지를 좀 잘라내. 타버린 심지는 그을음만 나니까. 작은누이가 중얼거렸다. 아버지 좀 보세요. 어떤 약도 듣지 않았잖아요. 아프시기전에도 아무것도 해논 일이없구. 어머니가 누이의 뺨을 쳤다. 약값을 줄일 순 없다. 누이가 깍던 감자가 툭 떨어졌다. 실패하시고 나서 아버지는 3년 동안 낚시질만 하셨어요. 그래도 아버지는 너희들을 건졌어. 이웃 농장에 가서 닭도 키우셨다. 땅도 한 뙈기 장만하셨댔었다. 작은 누이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 죽은 맨드라미처럼 빨간 내복이 스웨터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러나 그때 아버지는 채소씨앗 대신 알약을 뿌리고 계셨던 거에요.

 

4


지나간 날들을 생각해보면 무엇하겠느냐, 묵은 밭에서 작년에 캐다 만 감자 몇 알 줍는 격이지. 그것도 대개는 썩어 있단다. 아버지는 삽질을 멈추고 채마밭 속에 발목을 묻은 채 짧은 담배를 태우셨다. 올해는 무얼 심으시겠지요? 뿌리가 질기고 열매를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심을 작정이다. 하늘에는 벌써 티밥 같은 별들이 떴다. 어머니가 그만 씻으시래요. 다음날 무엇을 보여주려고 나팔꽃들은 저렇게 오므라들어 잠을 잘까. 아버지는 흙 속에서 천천히 걸어나오셨다. 봐라. 나는 이렇게 쉽게 뽑혀지는구나. 그러나, 아버지. 더 좋은 땅에 당신을 옮겨 심으리시려고.

 

 

5


선생님. 가정방문은 가지 마세요. 저희 집은 너무 멀어요. 그래도 너는 반장인데. 집에는 아무도 없고요. 아버지 혼자, 낮에는요. 방과 후 긴 방죽을 따라 걸어오면서 나는 몇 번이나 책가방 속의 월말고사 상장을 생각했다. 둑방에는 패랭이꽃이 무수히 피어 있었다. 모두 다 꽃씨들을 갖고 있다니. 작은 씨앗들이 어떻게 큰 꽃이 될까. 나는 풀밭에 꽂혀서 잠을 잤다. 그날 밤 늦게 작은누이가 돌아왔다. 아버진 좀 어떠시니. 누이의 몸에선 석유냄새가 났다. 글쎄, 자전거도 타지 않구 책가방을 든 채 백 장을 돌리겠다는 말이냐? 창문을 열자 어둠 속에서 바람에 불려 몇 그루 미루나무가 거대한 빵처럼 부풀어오르는 게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날, 상장을 접어 개천에 종이배로 띄운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6


그 해 겨울은 눈이 많이 내렸다. 아버지, 여전히 말씀도 못하시고 굳은 혀. 어느만큼 눈이 녹아야 흐르실는지. 털실뭉치를 감으며 어머니가 말했다. 봄이 오면 아버지도 나으신다. 언제가 봄이에요. 우리가 모두 낫는 날이 봄이에요? 그러나 썰매를 타다보면 빙판 밑으로는 푸른 물이 흐르는게 보였다. 얼음장 위에서도 종이가 다 탈 때까지 네모반듯한 불바라기 씨앗 처럼 동그랗게 잠을 잤다. 어머니 아주 큰 꽃을 보여드릴까요? 열매를 위해서 이파리 몇 개쯤은 스스로 부숴뜨리는 법을 배웠어요. 아버지의 꽃 모종을요. 보세요. 어머니. 제일 긴 밤 뒤에 비로서 찾아오는 우리들의 환한 가계(家系)를. 봐요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는 저 동지(冬至)의 불빛 불빛 불빛.

 

 

수첩 사이에 있던 마지막 시는 백석의 시이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라는 다소 긴 제목의 시이다. 남신의주시, 유동 마을에 사는 박시봉이라는 사람이 사는 방(방면)이라는 뜻인데, 아마도 시적 자아의 위치나 주소 같은 의미 정도 아닐까 싶다. 이 시 때문에 나는 "~~ 하는 것이었다"라는 표현이 꽤 맘에 들어 즐겨쓰게 되었고 아직도 이 습관이 남아 있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꿀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시를 읽은 지 참 오래되었다. 1990년대의 시는 이리 기억이 나는데 2000년대의 시, 하면 떠오르는 것이 없다. 예전 시들을 보면서 다시 시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성복 시인의 시에 나온 것처럼, 시인은 아무도 아프지 않음에도 모두 병들었음을 먼저 아는 사람, 아무도 아프지 않음에도 가장 먼저 아픈 사람이 아닐까. 그러므로 시인이 없는 세상은 위험한 세상이다. 그리고 시를 읽는 사람이 있어야 시인이 존재한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