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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소설과 옛날 드라마 -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

속에서 놀기/책 속에서 놀기

by sundayeunah 2013. 5. 9.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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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깊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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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들의 속도가 버겁다고 느껴질 때 나는 종종 옛날 소설을 읽는다. 잠자리에서 펼쳐 든 옛날 소설들은 뭔가 분석하거나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그냥 술술 읽힌다. 뇌를 쉬게 하는 휴식 같은 이야기들이다.

예전에 창작과 비평에 단편으로 실려서 한 두편 읽었던 기억이 나는 이문구의 관촌수필을 다시 제대로 읽었고, 김승옥의 무진기행도 다시 읽었다. 고등학교 때 읽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요즘은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책을 사는 재미가 쏠쏠해 예전에 미처 읽지 못했던 옛날 소설들을 사 모으고 있다. 마당깊은 집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샀다.

 

 

 

마당깊은 집을 읽으려고 한 데는 드라마에 대한 강렬한 기억 때문이었다. 드라마가 방영되던 시기를 80년대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시 찾아보니 1990년 1월의 일이었고, 한 6개월 정도 방영되었던 드라마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고작 1달, 그러니깐 총 8회 분량의 미니시리즈였다. 그 만큼 강렬한 기억이었다. 무엇이 슬펐는지 잘 생각은 안 나지만, 식구들 몰래 배겟머리에 눈물을 닦으며 훌쩍거렸던 기억이 난다.

 

이야기는 1950년대 전쟁 직후, 대구를 배경으로 '마당이 깊은 집'에 사는 주인집과 그 집 단칸방들에 세 들어 사는 피난민들의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월북한 것으로 추정되어 항상 가슴을 졸이며 살아가는 길남이네 식구들, 미군부대 다니는 딸과 치기공사인 아들을 둔 그나마 먹고 살기 편안해 보이는 경기댁, 군복 장사를 하는 평양댁 아줌마네, 쇠갈코리 손을 가진 상이군인인 준호 아버지네, 김천에서 아들만 데리고 피난 온 김천댁 식구들이 셋방 살이의 주인공들이다.

무엇이 어린 시절의 나에게 그렇게 인상적이었을까. 배고픔에 대한 맹렬한 묘사... 이를 악물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는 상황이란 것이 있는 거구나, 라는 삶에 대한 막연함 두려움... 모멸을 견디면서 두려움 속에서도 대문을 나서는 용기... 그리고 그 사이사이 있는 갖가지 사연의 죽음들... 이런 것들이 슬픔과 뭉클함을 주었던 것 같다. 

 

책을 다시 읽으니, 참 편안하게 읽힌다. 슬플 것도 없고 괜시리 안타까울 것도 없다는 담담한 어조에, 그렇다고 엄청난 사건이 있는 기승전결의 이야기도 아닌 것이 어느덧 읽다보면 소설이 끝이 나 있다. 며칠은 두고두고 아껴가며 잠자리에서 읽고 싶었는데 어느 잠 안 오는 밤에 그냥 다 읽어 버렸다. 아쉬웠다.

책은 1950년대가 배경이지만, 작가 김원일이 이 책을 쓴 것은 1988년이고, 나는 문학과 지성사에서 스테디셀러를 모아 총서로 다시 발행했던 2002년 판으로 읽었다.

 

드라마에서 가장 기억 나는 한 장면은 참 의외의 장면이다.

경기댁으로 나온 배우가 김수미였는데, 1950년대, 여기는 진짜 대구의 어느 단칸방마냥, 아침에 일어나서 긴 치마를 걷어들고 요강에 오줌을 누는 장면이 나오는데 오줌 소리까지 그대로 들렸다. 나도 어린 시절 방에 요강을 두었던 기억을 가진 세대다. 그 순간 정말 모든 게 사실 같아서 리얼리티란 게 이런 거구나-물론 그때 나는 리얼리티란 말은 몰랐지만-라면서 순간 1950년대의 대구 단칸방으로 그대로 점프하는 느낌이었다. 김수미란 배우가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물론 감독과 작가의 힘이 뒤에 있었겠지만. (장수봉 감독에 박진숙 극본이었다. 새삼 그리운 이름이네...)  관련 MBC 홈페이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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